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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기환 동해안권 본부장
한창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경주 쪽샘지구에 대한 아련한 추억이 새삼 되살아난다.

5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한두 가지의 이야깃거리를 꺼낼 수 있는 쪽샘 마을에 대한 그리움을 떨칠 수가 없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400여 가옥이 옹기종기 모여 미로 같은 골목길과 오래된 한옥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 쪽샘.

하지만 마을은 입구에 복원한 우물만 덩그러니 남긴 채 어느 날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신라 궁성인 월성의 북쪽 저지대에 있는 쪽샘 마을은 천마총과 황남대총이 있는 대릉원 인근의 신라고분 밀집지역이다.

이 지역의 샘물이 하늘이 비칠 정도로 맑고 맛이 좋을 뿐만 아니라 아무리 가물어도 줄지 않아 쪽샘이라 불렀다고 한다.

쪽샘 마을의 역사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신라 귀족들의 무덤으로 꽉 차 있던 이곳에 인위적으로 마을이 들어선 것은 아마도 신라가 멸망하고 난 다음부터가 아닐까 싶다.

근대에는 마치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길 주변으로 허름하지만, 운치 있는 한옥이 하나둘 들어서면서 제법 큰 마을이 생겨났다.

마을 중간쯤에 있는 육거리를 따라 이어진 작은 골목길은 이곳에서 생활하는 주민들마저 헷갈릴 정도로 얽히고설켜 불편이 따를 정도였다.

하지만 이 쪽샘 마을에 사람이 모여들었다.

다른 지역보다 집값이 싼 데다 시내 중심가에 붙어 있어, 생활이 팍팍한 사람이나 젊은이들의 보금자리로 자리를 잡아 갔다.

70~80년대엔 마을 안쪽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들어선 유흥가와 군데군데 보이는 보살 집으로 인해 외지인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도 이름을 떨쳤다.

한때는 일본인을 포함한 일부 관광객들의 필수 관광코스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처럼 천년고도 경주의 신라문화와는 또 다른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근대 골목문화의 상징인 쪽샘 마을이 없어진 것이다.

문화재청과 경주시가 쪽샘지구의 고분들을 조사한 후 인근의 대릉원과 연결해서 거대한 고분공원을 만들 계획으로, 2000년부터 주민철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쪽샘 유적은 4~6세기 신라 귀족들의 무덤이 밀집한 곳이다.

전체 면적이 축구장 15개 이상 들어갈 수 있는 11만 3천여㎡로, 2007년부터 신라고분유적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주시는 세계적인 신라유적의 발굴 모습을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도록 44호 고분 위에 돔으로 쪽샘지구 유적발굴관도 건립했다.

발굴과정을 공개하고, 발굴결과물을 보전, 전시해 새로운 볼거리 제공으로 관광객을 도심으로 유입한다는 복안이다.

어쨌든 신라인들의 영혼의 안식처였던 쪽샘지구는 머지않아 경주의 또 다른 관광지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무덤만 복원한 인근의 대릉원과 같은 고분공원이 아닌 근대 골목문화의 상징인 쪽샘에 대한 추억도 느낄 수 있도록 복원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오밀조밀하게 생겨 정감이 넘치는 골목길이나 아름다운 한옥을 복원할 수 없다면, 쪽샘에 대한 추억을 되살릴 수 있도록 미니어처나 사진물이라도 마련했으면 한다.

신라의 역사와 우리 근대사의 모습이 공존하는 모습으로 쪽샘 지구가 정비된다면 그동안의 아쉬움과 그리움이 조금은 잦아들 수 있을 것 같다.

쪽샘 지구가 부산 감천문화마을이나 통영 동피랑 벽화 마을을 능가하는 경주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

황기환 동해안권 본부장
황기환 기자 hgeeh@kyongbuk.com

동남부권 본부장, 경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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