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롤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감상) 병들지 않고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세상이다. 병든 눈으로 보아야만 잘 보이는 세상이다. 이 울긋불긋한 세상에 병들지 않은 것이 어디 있을까. 모든 안 아픈 척 할 뿐이다. 안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소리 내어 난 아프지 않다고 외치는 것들을 좀 보라, 그것이 더 아픈 중이다. 지금은 영산홍이 가장 그러하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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