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 얽혀 도는 별천지에 앉아 하늘 끝 한가한 구름 바라보네
‘학사루’라는 정명은 최치원이 신라 헌강왕 당시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저서감 벼슬을 했던 데서 비롯된다. 시독은 유교 경서를 강의하는 직책이었고 한림학사는 당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비롯한 국서를 작성하는 중책이었다. 헌강왕이 죽자 최치원은 외직으로 나돈다. 그 자신 신라의 6두품제도 아래서 극심한 좌절을 겪었고 그를 견제하는 세력도 엄존하고 있었다. 왕족과 관료들의 부패와 무능은 그를 주변인으로 내몰았다.
학사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으로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계자난간을 둘렀으며 함양의누정에서 흔히 보이는 활주는 없다. 12개의 기둥에 주련을 걸었다. 내용은 최치원을 기리는 7언시인데 작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다.
7월의 매미소리 누에 가득한데
루에 올라 회고하니 감회만 깊구나
상하림 긴긴 숲에 성만 높이 솟았고
넓은 들의 동쪽과 남쪽에 두 냇물이 흐르네
학사는 이미 황학을 타고 가버렸는데
행인은 우두커니 흰구름만 바라보누나
가련타 풍물은 예나 이제나 같은데
언제나 건물머리에는 시편만 걸려있네
학사루 기문은 연암 박지원(1737 - 1805)이 썼다. 그는 김종직 사후 300년 뒤에 함양의 이웃 고을인 안의(현재의 함양군 안의면)현감으로 부임했다가 함양군수 윤광석이 녹봉을 털어 학사루를 중건한 뒤 글을 부탁하자 1794년 ‘함양군학사루기’를 쓴다.“함양은 신라때 천령군이다. 문창후 최치원은 자를 고운이라 하는데 천령태수로 고을을 다스렸다. 누를 설치한 것은 아마 천년이 되었을 것이다. (중략) 아! 고운이 천자의 조정에서 입신했지만 당나라 왕실은 어지러웠고 부모의 나라에 은퇴했지만 신라 조정은 곧 끝나려했다. 천하를 둘러봐도 몸 붙일 곳 없는 것이 마치 하늘 끝 한가한 구름 같았다. 지쳐 머물다 홀로 멀리가 진퇴에 무심했으면 좋았으련만... 바람이 긴 대나무를 쓸쓸히 흔들고 한 마리 학이 쓸쓸한 것에 대해서는 시름겨워 학사가 짙은 가을을 읊는 것이다. 누가 학사라 이름 붙여진 것은 그 유래가 심원하다.”
함양에 온 유자광은 학사루에 올라 주변 경관을 보고 시를 써 누각에 걸었다. 그러나 이 현판은 곧 사라졌다.군수였던 김종직이 ‘고명한 선비들의 글이 걸려 있는 곳에 어찌 유자광 같은 인물의 글을 걸어놓을 수 있는가’라며 시판을 떼고 불에 태웠던 것이다. 이후도 김종직문하는 유자광을 자주 모욕하고 조롱했다.
함양 초등학교 교정에는 약 500년 정도된 느타나무가 있다. 보통 학사루(學士樓) 느티나무라고 부른다.높이 22.2m, 둘레 7.25m의 크기인데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407호로 지정되었다. 이 나무는 함양군수로 있던 김종직이 5살난 어린 아들이 홍역으로 죽자 아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심었다고 한다. 아들의 아호가 목아였다. 함양군민들은 지금도 매년 학사루 느티나무 아래서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김종직은 1471년부터 1475년까지 5년 동안 함양군수로 일했다. 군수로 와 보니 조정에 공납하는 물품이 함양에서는 나지도 않는 차였다. 배당된 물량을 채우려니 차가 많이 나는 전라도에서 사오는데 쌀 한 말을 주고 차 한 홉을 겨우 바꿨다. 이러니 백성들의 고통이 말이 아니었다. 김종직은 부임초기에는 진상품을 백성들에게 부과하지 않고 관에서 여기저기 구걸해서 물량을 맞췄다. 그러다가 드디어 관영차밭을 조성하고 차생산에 성공하게 된다. 백성들의 무거운 짐을 들어준 셈이다. 기념비가 휴천명 동호마을에 있다.
현재 학사루에는 조선시대에 쓴 중수기와 시판은 없고 1979년 이건당시 함양군수의 중수기만 남아있다. 그러나 함양문화원이 발간한 ‘함양누정기’에는 연암 박지원의 함양군학사루기‘와 유호인, 노진, 오숙,이방보 신치복,홍우전 등의 제영시가 실려있다.
산수가 얽히어 도는 별천지
이 누에 앉았으니 신선 같구나
마을과 이어진 푸른 대 서늘함이 자리에 스며들고
연기나는 긴 숲에 어두운 그림자 잠겼어라
점필(점필재 김종직)풍류는 백년이 흘러갔고
고운(최치원)이 남긴 흔적 천년이 아득하네
속절없이 인간사를 굽어보고 우르러 보며
난간에 기대 휘파람을 불고 노래하니 소년시절 생각나네
-유호인의 시 ‘학사루’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