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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섭의 신삼국유사] 40. 박혁거세와 알영왕후(1)

혁거세와 알영을 선도성모가 낳았다

윤용섭 삼국유사사업본부장 등록일 2017년04월27일 20시50분  

알영정
‘혁거세’는 ‘불구내’ 또는 광명이세(光明理世) -“광명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뜻이라 했다. 여기서 광명사상이 나오는데, 이 광명사상은 우리민족과 지극히 관계가 깊다. 우리나라의 산 이름에 백산(白山)이 유별히 많은 것, 인명과 지명에 해,ᄇᆞᆰ,백(白) 등이 많은 현상, 민족시원기부터 하늘을 공경하고 태양을 숭상한 사실, 백의민족으로서 흰 옷을 입는 전통 등이 광명사상과 관계있다. 특히 삼국유사 연오랑 세오녀 설화에서 나오듯, 해와 달의 정기가 신라의 백성으로 태어나고 활동했던 이야기, 동해안에 영일, 연일, 일월동 등 해와 달을 지칭하는 지명이 남은 사실 등이 이를 증명한다. 이처럼 신라의 초대 임금은 우리민족의 뿌리사상인 광명사상을 계승하며 출현하였다.

일연스님은 박혁거세의 탄생에 관하여 또 다른 설화가 전한다고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았다.

“이는 서술성모(西述聖母)가 낳은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인이 선도성모를 찬양하는 글에 ‘어진 인물을 임신하여 나라를 창건하라.’라는 구절이 있으니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또는 계룡(雞龍)이 상서(祥瑞)를 나타내어 알영(閼英)을 낳았으니, 또한 서술성모의 현신이 아니겠는가?”

즉, 혁거세와 알영을 선도성모가 낳았다는 기사다. 한편 왕위를 ‘거슬한(居瑟邯)’ 혹은 ‘거서간(居西干)’이라고도 한다.

당시 사람들이 다투어 축하하여 말하기를 “지금 천자(天子)가 이미 이 땅에 내려왔으니 마땅히 덕이 있는 여군(女君)을 찾아 배필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날, 사량리 알영정 또는 아리영정(娥利英井)이라는 우물 주위에 계룡(雞龍)이 나타났는데, 그 왼쪽 옆구리에서 어린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의 자태와 용모가 뛰어나게 아름다웠다. 그런데 입술이 닭 부리를 닮았으므로 월성 북천(月城北川)에서 목욕시키니 그 부리가 떨어져 나갔다. 그러므로 그 개울의 이름도 발천(撥川)이라고 하였다. 궁실을 남산 서쪽 기슭지금의 창림사(昌林寺)에 짓고는 두 신성한 아이를 모시고 길렀다. 사내아이는 박〔瓠〕과 같이 생긴 알에서 나왔으므로 그 성을 박(朴)으로 하였다. 계집아이는 그 아이가 나온 우물이름을 따서 알영이라 이름 지었다. 나이가 열세 살 에 이르자, 둘을 임금과 왕후로 삼았다(五鳳 元年 甲子年). 국호를 서라벌, 서벌, 또는 사라(斯羅), 사로(斯盧)라 하였다. 지금 세속에서 경(京)자의 뜻을 서벌이라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은 신라의 서불이 변천한 말이다.

처음에 왕이 계정(雞井)에서 났으므로 또는 계림국(雞林國)이라고도 하였다. 이는 계룡이 상서로움을 나타났기 때문이다. 일설에는, 탈해왕(脫解王) 시기에 김알지(金閼智)를 얻을 때에 숲 속에서 닭이 울었으므로 국호를 계림(雞林)으로 고쳤다 한다. 후세에 신라(新羅)로 국호를 정했다. 나라를 61년 동안 다스렸다. 왕이 하늘로 올라가 7일 후에 유체(遺體)가 부서져 땅으로 떨어지고, 왕후 역시 죽었다 한다. 나라 사람들이 합장하려고 하였는데 큰 뱀이 있어서 사람들을 쫒아내고 못하게 하므로, 오체(五體)를 각기 장례지내고 오릉(五陵)으로 삼았다. 역시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 하니 담엄사(曇嚴寺) 북쪽 릉이 이것이다. 태자 남해왕(南解王)이 왕위를 이었다.

이상이 박혁거세와 알영왕비의 탄생과 재위에 관한 기록이다. 신비에 쌓여있지만, 참으로 밝고 신성한 이야기다. 임금의 칭호가 거서간이고 말이 등장하는 것은 북방 유목민의 후예일 가능성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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