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초록’이다. 산천에 꽃이 지고 난 뒤 신록이 짙어지고 있다. 초록이라고 해도 산빛은 마술처럼 다채로운 빛을 보여준다. 솔잎의 짙푸른 등성이 위로 은빛이 도는 참나무 숲이 아름답게 수를 놓은 것처럼 희끗희끗 바람결에 일렁인다. 오월의 신록은 사람들을 조금 설레고 들뜨게 한다.

5월에는 근로자의날, 부처님오신날,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이어진다. 올해는 뒤이어 9일에 대통령 선거일까지 이어진다. 공기업이나 대기업 등 일부 ‘신의 직장’에서는 최장 11일간의 ‘황금연휴’를 누릴 수 있다. 보건복지부가 올해부터 주말을 재충전의 날로 삼는다며 토요일 근무는 전면 금지하고, 일요일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근하지 않게 했다. 그렇지만 이런 일·가정 양립 정책은 정부와 공공기관, 대기업 등에만 해당할 뿐이다. 전체 기업 수의 99%, 고용의 88% 비중을 차지하는 중소기업에서는 ‘그림 속의 떡’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제조업체 250곳을 대상으로 5월 초 징검다리 연휴 기간(1~9일) 평일인 2, 4, 8일 휴무 여부를 알아봤더니 절반가량이 정상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기업 가운데 50.4%가 9일 대선일에도 쉬지 않고, 1일 근로자의 날 34.1%, 3일 부처님오신날 23.7%, 5일 어린이날에도 11.1%는 정상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 근로자나 어려운 자영업자들에게는 ‘인천국제공항이 해외여행객들로 붐빈다’는 뉴스가 어느 외계의 일인 것으로 비춰진다.

그나마 일할 곳이라도 있는 사람은 다행이다. 취업 준비생들에게 5월은 그야말로 ‘잔인한 달’이다. 3월 초부터 시작된 기업들의 상반기 사원 공채가 4월 말이면 거의 끝난다. 5월에는 어느 기업엔가 취직해서 첫 월급으로 부모님에게 빨간 내의 선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올해도 대다수의 청년들이 실패했다. 9급 국가공무원 시험에 역대 최다 인원인 22만8천368명이 응시했지만 붙은 사람은 4천910명, 1.8%에 불과했다.

지난 24일, 3년째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던 스물다섯 살 청년이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가던 길에 경부고속도로 옥천휴게소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졌다. 가정의 달 5월은 ‘소외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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