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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뭐 대선 후보들이 이래?”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50대 주부가 5·9대선 첫 TV토론을 보고 나서 한 탄식이다. 실망한 것이 국민 대다수의 정서다. 국가 비전과 철학 그리고 정책 깊이가 빈약했다. 과반수 미달 정당은 집권 이후 야당과 타협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협치니, 연정이니 하는 지푸라기 같은 공약을 대단한 것인 양 포장한다.

우리 헌정사에서 의미 있는 선거는 손꼽을 수 있다. 제5대(60년 7·29) 총선거는 4·19혁명 이후 민주정부를 수립한 대한민국 첫 정권 교체다. 유신 ~ 5공의 권위주의 정권을 종식시키고 민주정부를 수립해야 하는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제13대(87년 12·16) 대선이다. 제1야당 통일민주당에서 지역균열 전략으로 뛰쳐나온 평민당이 아니었으면 노태우 정부 탄생은 언감생심이다. 뒤틀린 ‘87 체제’의 슬픈 출발이다.

이번 대선은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선거다. 헌법에 규정된 탄핵 제도가 작동된 이후 첫 선거다. ‘87 체제’ 이후의 누적된 폐단을 고치고 주어진 정치 과제를 풀어야 한다. 그러나 무능하고 썩은 정당들이 국민이 부르짖은 목마름을 제도화하고 결과물로 산출하지 못했다. 정권 재창출이나 정권 교체 정도의 낮은 수준의 정치변화에 집착했기 때문이다.

‘포스트 87 체제’는 다시 한 시대를 넘겨야 한다. 희망은 또다시 키워야 한다. 문제는 인물이다. 이 나라의 영웅을 배출한 대구·경북(TK)이다. 지금은 큰 나무가 없어 정치민심이 기댈 언덕이 없다고 한다. 의기소침해 있을지 모를 두 사람을 주목하자. 대구에서는 박근혜에 등을 돌렸다는 정서로 유승민은 이번 5파전 대선 레이스에서 성적이 초라하지만 ‘따뜻한 개혁보수’의 리더로, 정책에 능한 정치가로 이미지를 굳혔다. 김부겸은 쉽게 당선될 수 있는 군포를 버리고 대구를 찾은 포용의 정치인으로, 민주당 중도·합리파의 리더로 차기 민주당의 기대주다. 나라에 유익한 일을 하도록 더욱 키워야 한다.

험한 세월을 견디지 않은 자는 진정한 정치지도자로 클 수 없다. 여말 개혁을 두고 급진과 점진으로 갈린 정도전과 정몽주를 보라. 정도전(영주)은 고려말 보수파의 상징인 이인임(성주) 정권 때 친명(親明) 노선을 걸어 유배와 유랑 세월을 보냈다. 김춘추는 백제의 침략으로 대야성이 함락, 풍전등화에 처한 신라의 성골에 불과했지만, 삼국통일의 위업을 창조했다. 프랑스 ‘앙시앙레짐’을 해체한 이론가였던 루소는 주 베네치아 대사 보좌관이라는 한 줌의 자리마저도 타의로 그만뒀다. 20세기 위대한 사회과학자의 하나로 꼽히는 막스베버는 독일 제헌의회에 낙선했다. 이들은 그런데도 양탄자 길보다 가시밭길을 가며 정치로 희망을 만들고자 했다. 유(劉)-김(金)도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인내를 딛고 일어선 불굴의 인물은 현 정가에도 있다. 무소속 남해군수, 경남지사를 거친 촌뜨기 김두관은 4년 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문재인에 패하고도 보수의 텃밭이자 생면부지의 경기도 김포에서 국회에 등원했다. ‘86세대’의 리더인 김영춘은 서울을 박차고 불모지 부산에 도전해 재수를 해서야 부산민심을 얻었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초등학교를 마치고 경기도 공단으로 가 생업에 매달려야 했다. 그 간난신고(艱難辛苦)로 인해 가난하고 힘없는 자가 제대로 숨 쉬고 사는 세상으로 만드는 비전을 가졌으리라.

다만, 아무리 지역 인사라도 이들이 책임 정치를 배신할 때는 과감히 추방해야 한다. 부패 스캔들로 유죄를 받고도 현란한 혀를 국민에게 놀리는 정치인이 버젓이 활개를 치는 한국정치판이다. 우리 지역 민심은 그런 것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 대기추상(待己秋霜)이다. 애정과 함께 추상같은 잣대를 함께 가져야 웅도 경상북도, 3대 도시 대구의 자부심을 가진 시민(주권자)답지 않을까….

김정모 서울취재본부장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으로 대통령실, 국회, 정당, 경제계, 중앙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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