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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을 걷다] 3. 경주 봉길해변~나정해변

"동해바다 용이 되어 나라 지키겠다"…문무왕 목소리 바람결에 들리는 듯

이순화 시인 meeyane@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5월07일 20시04분  
이견대에서 내려다본 봉길해변
신라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해파랑길 나아 해변을 걷는다. 푸른 동해를 옆에 두고 첫발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월성원자력발전소가 해안 길을 가로막고 있어 해파랑길을 봉길터널로 돌려놓았다. 터널은 어둡기도 하거니와 교통량도 많아 걷기에는 아주 위험한 도로다. 여기서 봉길해변까지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

얼마나 달렸을까.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자 다시 푸른 바다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에 가슴이 뛴다.

문무대왕릉
문무왕의 유해를 장사지낸 바위섬이 바로 앞에 보이는 봉길 해변이다. 저 바위섬을 두고 누구는 문무대왕릉이라 부르고 누구는 문무수중릉이라 하고 또 누구는 대왕암이라 우긴다. 어떻게 부르는 게 바른 명칭일까. 다 맞는 말이다. 같은 곳을 가리키는 같은 쓰임의 이름이다. 문무왕은 삼국을 통일하고 죽어서도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와 백성을 지키겠다며, 봉길 앞 바다에 수장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다. 수중릉 앞에서 길손은 공손히 두 손을 모아본다.

대왕암을 뒤로 하고 감은사로 가기 위해 발길을 옮긴다. 길을 잘 못 들었나. 감은사는 저쪽 대종천 너머에 있는 것 같은데 강을 사이에 두고 나는 이쪽에서 길을 찾고 있다. 그러고 보니 감은사로 가려면 남북으로 뻗은 대종천 다리를 건너야 했다. 종종 낯선 여행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서성거림마저도 이미 운명의 궤도에 오른 건 아닐까. 그러다 보너스처럼 나타난 절경 앞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은 일.

대종천을 건너 경주 쪽 지방도로로 내려서니 오른쪽 용당리 산자락에 감은사가 보인다. 절로 가는 길에 해파랑길 안내 붉은 천 띠가 나뭇가지 끝에서 손짓을 하고 있다. 오른쪽으로는 야트막한 산기슭을 끼고 왼쪽으로는 논과 밭, 언덕에는 이제 막 눈을 뜨기 시작한 풀꽃들이 봄비에 젖어 싱그럽다.

감은사 3층 석탑
감은사 3층 석탑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에 터를 잡은 감은사지. 삼층 동탑, 서탑을 양옆으로 두고 몇 걸음 들어서니 절은 흔적도 없고 금당 아래 초석만 남아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문무왕은 불심으로 왜구를 막고자 동해구인 양북 땅에 절을 짓기 시작했다. 왕이 절을 다 짓지 못하고 숨을 거두자 아들 신문왕이 그 뜻을 받들어 절을 완공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感恩寺)라 이름 붙이고, 금당 초석 아래 구멍을 내어 동해의 화신(化神)이 된 부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때는 절 뜰 앞까지 바다였다고 한다. 절터 곳곳에는 사각형의 초석(礎石)과 대석(臺石) 사이, 틈을 비집고 파랗게 봄풀이 돋아 봄꽃이 피어 그 빛깔이 대왕의 유언만큼이나 붉다. 뒤란 대숲을 흔드는 바람결에 왕의 마지막 단호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내가 죽거든 왜구가 들어오는 길목인 동해에 장사지내라.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와 백성을 지키겠다.”

해파랑길과 감은사 3층 석탑
해파랑길 표식이 감은사 뒷길을 가리키고 있다. 용당산 두 갈래 길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흙냄새에서 봄 냄새가 난다. 어디선가 벌목공의 톱질 소리가 쩌렁쩌렁하다. 청량한 새소리 솔바람소리에 귀가 간지러울 지경이다. 물오른 버들가지라도 꺾어 피리 만들어 불고 싶다. 만화방창 봄 산에 장자의 나비가 날아든 듯 더없이 향기롭다.

상큼한 봄 냄새에 취해 산자락 나무계단을 구르며 내려서니 31번 국도가 발아래 나선다.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500m나 올라갔을까 이견대(利見臺)다. 문무왕의 수중릉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다. 신문왕이 이곳에서 용이 된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는 얘기를 들은 듯도 하다. 동해의 용으로 둔갑한 문무 화신(化神)이 감은사로 오르락내리락 했으리라. 대왕의 제사를 모시는 자리가 여기고, 아들 신문왕이 부왕으로부터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는 신비한 피리를 받은 곳이 또한 여기다.

해파랑길
발아래로 갈매기 떼 날고 동해로 흘러드는 대종천 물이 유난히 푸르다. 일설에 대종천은 황룡사대종이 지나간 자리라 한다. 몽골군에게 도적질 당할 뻔했던 대종을 지키려고 문무 화신(化神)이 나타나 풍랑을 일으켰던 곳이 바로 저기일 것 같다. 종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지 않을까, 두 귀를 오래 바다에 둬 본다. 내 귀는 한없이 순해져서 그냥 믿고 싶은 것이다.

이견대를 뒤에 두고 좀 전에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동해구(東海口) 석주 앞에서 바다 쪽으로 길을 내려선다. 감포 깍지길이다. 열 손가락을 서로 엇갈리게 맞추어 손깍지를 낀다. 앞서지 말고 뒤 서지도 말고 나란히 옆으로 선다. 어제는 엇갈린 너와 내가, 오늘은 갑과 을이, 내일은 보수와 진보가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다. 뜨겁거나 혹은 차갑거나 서로의 체온을 나눈다. 저 만치 가다 보면 어느 샌가 두 마음이 한마음이 되어있지 않을까.

감포깍지길 촛대바위
모든 경계를 허물고 쉬엄쉬엄, 동해 바다를 오른 쪽에 두고 왼쪽으로 대본3리 제당을 지나 대밑길 촛대바위 앞이다. 여기 기도하러 오는 사람 있느냐고 여쭙는 말에 채마밭을 일구던 노인이 “기도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라” 무심하게 툭, 받아친다. 민가에는 붉은 고무통에 젓갈 삭히는 그릇들이 줄을 서 있다. 통 안에는 생선들이 각자의 뼈대를 허물며 겨울이 서너 번이나 왔다 간지도 모르고 푹 곰삭으리라. 언젠가 또 이 집 저 집 밥상이 풍성하리라.

작은 어촌마을이 끝나자 해변이다. 모래 자갈길을 걷다 큰길 쪽으로 폐타이어 박아놓은 가파른 계단이 나오면 한 번 더 바닷가 풀숲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폐타이어계단을 올라섰다간 무서운 개와 마주하기 십상이다. 이쪽은 길이 아니다. 나도 이리로 갔다가 혼쭐이 났다.

구붓한 바닷가. 그믐 사리 때라 그런지 높은 파도 소리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오른쪽으로는 동해를 끼고 왼쪽으로는 솔숲을 지나 띄엄띄엄 해안 경비 초소를 지나 철조망 길이다. 어쩌면 바다 깊이 가라앉은 대종소리가 들릴지도 몰라 가만히 귀 기울여본다. 파도를 가르며 울려오는 종소리, 은은한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발끝에 힘을 모아 포장도로로 올라서니 저 앞이 나정 해변이다. 백사장이 봄비에 씻겨 반짝반짝 눈이 부시다.



글 이순화 시인

□여행자를 위한 팁

도보 거리: 봉길해변-감은사-용당산-이견대-감포 깍지길-나정해변(8.9km)
도보 소요 시간: 약 3시간쯤 걸린다.
대중교통편: 전화번호: 054-742-2691
대중교통 소요시간: 나아해변-봉길 해변까지 15분. 요금은 1,450원. 거리는 6.5km
나아정류장에서 봉길해변 가는 좌석버스 150번.
하루에 17번 운행(1시간 간격)한다.
첫차는 6시 25분
막차는 20시 50분이다.
나아해변에서 나아버스정류장까지 도보 4분.
봉길1리 버스정류장에서 봉길해변까지 도보 4분.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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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미 인터넷기자

    • 서선미 인터넷기자
  • 인터넷경북일보 속보 담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