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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많이 싸웠습니다. 이제 서로 화해할 때입니다. 서로 다른 것을 사랑할 때입니다. 모두 힘을 합해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염려할 때입니다. 이제 공격 충동을 자기 안으로 돌려 자기와의 싸움을 한층 더 격렬하게 진행시켜야 합니다. 분열의 에너지를 거대한 용광로 안에서 하나로 녹여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구한말(舊韓末) 우리가 겪었던 ‘세계의 비참’이 재현될지도 모르는 엄중한 상황입니다. 구차한 설명은 약하겠습니다.

자기와의 싸움에도 당연 ‘싸움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예부터 그런 ‘싸움의 기술’에 대한 여러 생각이 있어왔습니다(각종 병법서 등). 오행사상(五行思想)도 그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오행은 주로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으로 설명됩니다. 우주 구성의 5원소,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가 서로 낳고 이기는 규칙을 따른다는 것입니다. 상생은 쇠(金)에서 물(水)이, 물(水)에서 나무(木)가, 나무(木)에서 불(火)이, 불(火)에서 흙(土)이, 흙(土)에서 쇠(金)가 생긴다는 것이고, 상극(相剋)은 쇠는 나무를 이기고(金剋木), 나무는 흙을 이기고(木剋土), 흙은 물을 이기고(土剋水), 물은 불을 이기고(水剋火), 불은 쇠를 이긴다(火剋金)는 것입니다.

오행사상을 인용하는 것은 특별히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규칙을 존중하면서도 처한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을 잘해야 한다는 오래된 ‘싸움의 기술’하나를 소개하기 위해서입니다. 규칙 위반의 대상은 ‘쇠는 나무를 이긴다(金剋木)’입니다. 쇠와 나무만 놓고 보면 당연히 쇠가 더 단단하고 무겁습니다. 그래서 쇠로 만든 도끼로 나무도 베어내고 장작도 팹니다. 물성(物性)만 놓고 본다면 ‘쇠가 나무를 이긴다’는 말은 분명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인간 세의 복잡한 사정(事情) 안에 놓이게 되면 바뀝니다. 나무가 쇠를 이길 때도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쇠를 이긴 싸움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이 일본의 검호(劍豪) 미야모토 무사시의 마지막 결투 이야기일 것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마지막 목숨을 건 결투를 벌인 것이 사사키 고지로와의 간류지마(嚴流島) 결전(決戰)입니다. 사사키 고지로는 당시 최고의 검술가(劍術家)로 인정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야모토에게 일격을 맞고 허무하게 쓰러집니다. 미야모토가 사사키를 이긴 것은 그가 기본적인 ‘싸움의 기술’에 충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첫째, 상대가 자신의 눈을 살피지 못하게 태양을 등지고 섰습니다. 그는 배를 타고 태양을 등진 채 약속장소에 나타났습니다. 뭍에서 기다리던 사사키는 어쩔 수 없이 안법(眼法)의 정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는 족법(足法)이었습니다. 미야모토는 물속의 결투장으로 사사키를 불러내 발놀림에서의 열세를 만회합니다. 마지막이 임기응변, 상황에 맞는 ‘규칙의 위반’이었습니다. 사사키의 장검(長劍)은 시중의 어떤 칼로도 당해낼 수 없는 당대 최고 무적의 병기였습니다. 그것을 익히 알고 있는 미야모토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창의성을 발휘해서 그것을 극복합니다. 밤새 나무를 깎아서 사사키의 칼보다 한 척은 더 긴 목검을 만듭니다. 그는 그 긴 목검을 들고 뛰어들어가 먼저 상대의 머리를 내려칩니다. 최대한 먼 거리에서 팔을 뻗어서 상대의 칼이 내 몸에 닿기 전에 먼저 상대를 제압합니다. 머리를 맞고 비틀거리는 사사키의 늑골을 한 번 더 내리치는 것으로 미야모토의 승리는 확정됩니다. 쇠로 만든 칼은 그 움직임의 마지막을 항상 몸쪽으로 당겨서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결국 ‘쇠보다 가볍고(보통사람에게는 무겁지만) 뻗을 수 있는’ 목검이었기에 가능한 승리였습니다.

이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규칙을 세울 때입니다. 상황에 맞는 ‘싸움의 기술’을 쓸 때입니다. 지나간 세월 동안 우리를 포박해 온 낡은 규칙들을 과감히 위반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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