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선암사로 그녀 만나러 가는 길
길 위에 검은 나비들 떼 지어 죽어 있다

오월에 검은 나비들의 죽음이라니
진도 맹골수도에 수장된 어린 넋들

검정나비로 환생해 다시 죽은 것인가
구불텅구불텅 직각으로 허리 구부린

육백 살 선암매 그녀에게
참담한 생의 비의를 오래 물어본다

매화, 개나리, 벚꽃, 목련, 조팝꽃, 유채꽃,
복사꽃, 살구꽃, 그리고 아기진달래까지

만남과 헤어짐에는 매듭이 있는 법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정지된 우주

시간의 굴곡을 잊어버려 한꺼번에 핀
이상한 계절의 꽃들 소리 없이 이울고 있다




감상) 봄이 사라진 사계절을 살고 있다. 여름이 이상한 사계절을 살고 있다. 꽃은 한꺼번에 왔다 한꺼번에 사라지고, 두 계절이 겹쳐 아무리 떼어내려도 뗄 수 없는 샴쌍둥이가 되었다. 봄의 끝자락에 만나자 했던 약속은 어쩌고 여름이 시작되면 만나자 했던 약속은 또 어찌하나.(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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