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식시인11.jpg
▲ 이상식 새경북포럼 포항지역 위원·시인
달력을 펼치면 ‘무슨 날’하는 기념일이 빼곡하다. 금시초문인 양 생소한 행사명도 보인다. 농업과 관계가 적은 거개의 도시인에게 ‘흙의 날’이 그렇고, 승용차만 소유한 세대가 태반인 ‘자전거의 날’ 역시 낯설다. 또한, 유월의 현충일과 십일월의 순국선열의 날은 엇비슷해 차이점이 아리송하다.

인생을 살아가노라면 나만의 특별한 경우가 생긴다. 출생일과 결혼일은 보편적으로 갖는 소중한 날이다. 제각기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자축과 성찰의 기회로 삼고 나름의 교분을 나눈다. 특히 애완동물을 입양한 가정에선 또 하나의 가족 축일을 맞는다. 바로 녀석들의 생일날이다.

‘개 공장’ 출신의 흙수저 견공은 족보가 따로 없다. 애견숍에서 건네준 메모장이 유일하다. 날짜가 정확한지도 모른다. 한데도 그날이 오면 평소 먹는 사료 대신에 고기 같은 특식을 주곤,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망울을 맞춘다. 개는 꼬리에 영혼이 있다는 몽고의 속담처럼 힘차게 흔들며 화답한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를 보면 ‘개의 일 년은 사람의 칠 년과 같다’는 대사가 나온다. 가끔은 미남이(나의 애견 이름)를 보면서 그 말을 되뇐다. 운명은 누구도 모르나 녀석은 성큼성큼 나이를 먹는다. 왠지 아련히 서글프다. 고백하건대 미남일 화장해서 뿌릴 나무도 정해 놓았다.

젊은 남녀의 연애를 다룬 이야기엔 개를 소재로 한 대화가 심심찮다. 영화 ‘엑시덴탈 러브’에도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우연히 만나 깊은 감정에 빠진 여자가 말한다.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동물을 키워 봤어요? 남자가 답한다. 개를 가졌다고. 그러자 그녀는 자기도 그랬다며 기쁨의 입맞춤이다.

반려동물을 건사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를 짝사랑하는 것과 흡사하다. 주인의 의도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소통이 쉽지 않다. 지적 장애아를 대하듯이 세심한 배려와 인내가 요구된다. 자칫 조급히 굴다가는 나쁜 보호자로 전락하기에 십상이다.

개는 인간의 오랜 친구이다. 유명 인사들 가운데는 애견인이 많다. 청나라 서태후가 길렀던 페키니즈는 상어 지느러미, 메추라기 가슴살, 영양의 젖 같은 음식을 먹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애완견은 스패니얼. 즉위식 날에도 귀가하여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당선 후 포르투갈 워터 도그를 맞이했다. 두 딸과 한 약속 때문이었다.

한때 주택가 낡은 대문엔 ‘맹견 조심’이란 경고가 눈에 띄었다. 이젠 음식물 잔반을 처리하거나 도둑을 지키는 본능에서 벗어나, 존재의 고독을 다독이는 품위 있는 역할을 수행하는 견공들. 그 지위에 걸맞은 애견 문화가 절실하다.

광고의 3B 법칙은 아기(Baby), 미인(Beauty), 동물(Beast)을 모델로 등장시켜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 대선에 출마한 후보들도 이를 활용한다. 우리나라 애완동물 보유가구는 약 22%로 1천만 명에 이른다. 모 후보자는 당선되면 유기견을 입양하겠다고 한다. 낙선되면 하지 않겠다는 뜻일까. 즉석의 행동으로 진심이 빛났을 텐데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반려동물의 날’을 제정하기를 제안한다. 배변을 치우지 않는 견주에 대한 경각심과 이웃집에 피해를 주지 않는 에티켓, 그리고 학대받지 않을 권리에 관한 책임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면 해서다. 진정한 선진국은 동물의 복지를 존중하는 시민의식이 아닐까.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