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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호 호서대교수 법학박사
작가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격자소설적 시선을 차용하여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격자소설은 시간상으로 고정된 하나의 사건이나 인물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주인공 조백헌이 소록도 병원에 병원장으로 취임하여 나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켜 주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이다. 제2부는 주인공의 정신적 방황을 그리고 있다. 제3부는 주인공이 5년 후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 돌아와 일상에 다시 정착하는 과정을 그렸다.

새 정부가 출범하였다. 문재인 정부다. 취임 일성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한다. 새로운 것이 없다. 선거 기간 중에 이미 들었던 말들이니까 말이다. 적폐 청산만으로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없다. 자연은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게 주어진 환경을 의미한다. 항상 그대로인 자연처럼 있는 그대로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 과거 정부의 흔적 지우기가 대대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가 이를 시사한다. 그러나 인간과 인간이 서로 사랑과 자유를 소유하고 있을 때 화해할 수 있지만 한쪽이 힘을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지배자로서의 위치를 점하고 다른 한쪽이 그 힘의 지배를 받는 피지배자로서 관계가 설정된 경우 화해는 불가능하다. 보아하니 문재인 정부에서도 끊임없는 갈등이 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권력 담당자들이 자유 없는 힘의 행사나 사랑 없는 힘의 행사는 남용이라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자유 없는 힘은 끊임없는 배반만을, 사랑 없는 힘은 강요된 의무만을 낳을 뿐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한 사람의 천국은 다른 사람에게는 지옥이 될 수 있다. 자유와 사랑에 기초한 실천적 힘이야말로 인간사회를 천국으로 만드는 기본적 조건이다. 개혁이라는 미명으로 과거 정부의 과오나 들추는 것은 정치보복에 다름 아니다. 이청준은 문둥이들의 천국은 그것이 밖의 인간의 천국과 대립될 때 이미 천국이 아니라 문둥이들의 수용소가 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권력의 꿀맛에 취해 자신들의 천국을 만끽한다면 밖은 수용소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새 정부가 제시하는 적폐의 청산은 결코 유토피아의 건설이 아니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도 아니고 또한 오웰의 ‘동물농장’도 아니다. 문재인의 천국에는 천국이란 형식만 있을 뿐 선택이 불가능한 천국이다. 우리 사회에는 절벽을 무너뜨리고 그 절벽 대신 인정이 넘나드는 다리가 놓여야 할 곳이 많다. 그런데 그 방법이 강남 부자들의 소득을 빼앗아 다리를 놓는다면 이것은 지옥의 묵시록을 쓰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첫째 주에 드러난 여러 정치적 행보들을 보면 마치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 속에 제시한 신앙의 정치학처럼 비친다.

문재인 정부 4일 만에 북한은 취임축포를 쏴주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한 새 정부의 태도를 보면 아마도 흐지부지 뭉개고 넘어갈 것처럼 보인다. 북한의 태도변화를 기다려 평양이나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김정은을 제대로 다루려면 군사적 제재와 경제적 압박에 정치와 외교도 필요하다. 그런데 논리적 연관성도 없는 맹목적 믿음에서 나온 마술적 사고에서 좌파가 벗어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인간의 천국을 지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문둥이들의 천국을 지으려 한다면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결코, 이 나라는 좌파들의 천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새 정부의 권력자들은 초월적 존재의 지배로부터 인간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문재인 정부의 과제는 자신들만이 사회적 발전을 담당하고 그것을 의식적으로 방향 짓는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에서 얼마나 멀리 탈피하느냐에 성공이 달려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고 또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좌파의 평등 이념이 자유 속에 포함된 정치적 권한의 등가물인 한 민주주의의 개념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그들 ‘좌파들만의 천국’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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