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대가 저를 정치로 불러냈다. 이제 국민과 함께 높이 날고 크게 울겠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시절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3년 불비불명(三年 不飛不鳴)’ 고사를 인용했다.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는 이 성어는 웅비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음을 뜻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춘추시대 강국 초나라 장왕이 신하들에게 “앞으로 과인에게 간언하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엄명을 내렸다. 그 뒤 장왕은 국정을 팽개치고 술잔치나 벌이면서 3년 동안 허송세월 했다. 나라의 정치가 어려워지자 충신 오거가 죽음을 각오하고 간언을 결심했다.

“폐하, 신이 수수께끼 하나를 내겠습니다” “말해 보시오” “언덕 위에 큰 새가 한 마리 있는데 그 새는 3년 동안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았습니다. 도대체 이 새가 무슨 새이겠습니까?” “3년이나 날지 않았지만 한 번 날면 하늘 높이 오를 것이요, 3년이나 울지 않았지만 한 번 울었다 하면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오.” “경의 말뜻을 알았으니 물러가오”

하지만 그 후로도 장왕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았다. 참다못한 대부 소종이 직간했다. “경은 포고문도 읽지 못했는가?” “읽었습니다. 하오나 폐하께서 정사에 전념만 해 주신다면 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장왕은 그 날부터 주색을 멀리하고 국정에만 올인 했다. 장왕이 3년 동안 ‘불비물명’한 것은 충신과 간신을 가려내기 위한 위장술이었다.

장왕은 수백 명의 간신과 부정부패 관리들을 처단했다. 그리고 죽음을 각오하고 충간을 한 오거와 소종 등 충신과 능력 있는 인재들을 대거 기용하고 국정을 쇄신, 부국강병책에 매진했다. 그 결과 제환공, 진문공에 이어 세 번째 패자가 돼 춘추 5패 중 ‘공(公)’ 아닌 ‘왕(王)’으로 불린 유일한 군주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첫 번째 대권 도전에서 패배 ‘3년 불비불명’의 웅지를 펴는데 실패했다. 재도전에서 승리함으로써 ‘3년 불비불명’의 웅지를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하지만 화급한 국정의 최우선 과제를 제쳐 두고 과거에만 매달리면 ‘불비불명’의 웅지는 백일몽으로 끝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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