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배후가 생겼다
그들은 전화선 속에서 숨죽여 듣고 있다가
이따금 지직거린다, 부주의하게도

그는 엿들으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쩌면 그는 아주 선량한 얼굴을 지녔을지 모른다
절제된 표정과 어투를 지닌 공무원처럼
경험이 풍부한 외교관처럼
이삿짐센터 직원이나 택배기사처럼
무심한 얼굴로 초인종을 눌렀는지도 모른다

문 뒤에 서 있는 투명인간들
주차장 입구에서 현관문 앞에서 복도와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친 듯 지나는 낯선 얼굴들

개 한 마리가 다가와
마악 내려놓은 쓰레기봉지를 킁킁거리다 사라진다

그러나 배후는 배후답게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후략)



<감상> 지난 생일 그가 사 준 장미 한 송이가 잘 말라 다시 꽃이 되었다. 불을 끄면 그 꽃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자세히 들으려고 귀 기울이면 소리는 어느새 사라지고 등을 돌리면 다시 시작되는 소리 그 꽃의 말을 들으려고 일찍 불을 끄거나 눈을 감는다 날마다 들리는 건 아니지만 어쩌다가는 그 소리를 알아듣는 것도 같다. 그의 문자가 오는 날이라든가…….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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