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 할 것 없이 사람의 힘으로 이루기 힘든 일을 할 때 희생 제물을 바쳤다. 죄를 사할 때도 마찬가지다. 고대의 이스라엘인들은 속죄일에 염소를 속죄의 제물로 사용했다. 제물인 숫염소를 잡아 그 피를 속죄판 위와 앞에 뿌린다. 그리고는 염소의 머리에 두 손을 얹고 모든 죄를 고백해 염소 머리에 씌운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죄가 사해진다고 여겼다. ‘희생양’의 어원이다.

동물을 희생 제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람을 바친 인신공양(人身供養) 풍습도 세계 여러 민족에서 볼 수 있다. 이 풍습은 수렵시대·유목시대를 거쳐 농경시대까지도 존재했다. 아프리카에서는 풍작의 기원과 장례 때 산 사람을 희생물로 바쳤다. 멕시코에서는 태양신에게 인간을 희생물로 바쳤다. 그 외에도 페루·잉카·인도·그리스·로마·중국 등 세계 곳곳에서 인신공양이 있었다.

토목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옛날에는 성이나 제방을 쌓거나 교량 공사를 하면서 사람을 물밑이나 흙 속에 묻어 신의 마음을 달랬다. 이렇게 해서 축조된 건축물은 인간의 영(靈)이 서려 있어서 튼튼하게 유지된다는 인주전설(人柱傳說)도 여러 곳에서 전한다. 우리나라에도 성덕대왕신종, 일명 ‘에밀레종’의 만들 때의 설화가 유명하다. 종 만들기가 번번이 실패해 어린 아이를 쇳물에 던져 넣자 종이 완성됐다는 설화다.

이렇게 신라 시대에 종을 만들 때나 성을 쌓을 때 인신공양을 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지만 명확한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런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신라 왕궁을 복원하기 위해 대대적인 발굴조사를 벌이고 있는 월성 성벽 기초층에서 1500여 년 전 제물로 바쳐진 사람의 뼈 2구가 발견했다.

주거지나 성벽을 짓는 과정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속은 고대 중국 상나라(기원전 1000~1600년) 때 유행했다는데 신라 시대에도 이 같은 악습이 행해졌다니 놀랍다. 16일 현장에서 발굴 중간성과를 발표하면서 이종훈 문화재연구소장은 “설화로만 전해지던 이야기가 실제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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