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백성 모두 나라에서 먹여 살려야"

신라 제3대 박 노례니질금 또는 유례왕(儒禮王)이 매부(妹夫)인 탈해(脫解)와 서로 왕위를 양보하다가, 즉위한 사실은 이미 하였다. 노례왕을 『삼국사기』는 유리이사금이라 하는데, 유성공(劉聖公) 경시(更始) 원년 계미(癸未)에 즉위하였다.

유성공 경시제는 누구인가? 신라가 한참 나라를 일구고 있을 때, 이웃 한나라는 전쟁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유방이 세운 한나라가 외척 왕망에 의해 일단 망한 다음, 남양 땅의 유연(劉縯)과 유수(劉秀) 형제가 한나라를 부흥하는 군사를 일으키고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하니, 곧 경시제다. 경시제는 유약하고 무능하여 장군들 앞에서 말할 때, 떨려서 손에 땀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탐욕과 시기심이 강한 혼군으로 실정을 거듭하다 결국 적미적(赤眉賊)에게 패하였다. 이에 5천 명의 군사로 곤양성을 포위한 왕망의 40만 대군을 물리친 유수가 왕랑과 동마군(銅馬軍), 적미군(赤眉軍), 외효와 공손술 등을 차례로 정벌하고 천하를 재통일하니, 이가 곧 후한의 광무제(光武帝)며 그 연호는 건무(建武)다.

노례왕은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고 농사를 일으키고 백성을 구휼한 훌륭한 임금이다.

노례왕 9년, 6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이에 6성(六姓)을 하사하였다. 신라6성은 이(李)·최(崔)·정(鄭) ·손(孫)·배(裵)·설(薛)로서 육부촌의 후손이다.

그리고 도솔가(兜率歌)를 지었는데 차사(嗟辭)와 사뇌격(詞腦格)이 있었다한다. 차사는 ‘아으’ 같은 감탄사를 말하는데, 옛 노래에는 이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라향가의 마지막 구절은 거의 ‘아으’로 시작한다. 이 전통은 시조에도 남아, ‘어즈버’, ‘두어라’, ‘아이야’ 등의 차사를 종장 시작에 부른다. 사뇌격이란 사뇌가의 격식이란 말이니, 도솔가가 사뇌가의 형식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신라 3대 노례왕 시절부터 사뇌가의 격식이 있었다는 기록이 된다. 향가의 ‘도솔가’는 월명사가 제35대 경덕왕 19년에 나타난 두 개의 태양을 다스리기 위해 지었다고 『삼국유사』 권5 감흥편에서 이야기 한다. 이 둘은 다른 노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5년조에서는 도솔가를 짓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유리이사금이 백성들을 아끼는 좋은 정치를 하자 백성들의 풍속이 즐겁고 편안해져 도솔가를 짓게 되었다.

노례왕의 선정(善政)은 삼국사기에 더욱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즉, 유리왕 5년, 하루는 임금이 민정을 살피러 나갔다가 한 할머니가 배가 고파서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곧 할머니를 모시게 하여 옷과 음식을 내렸다. 그리고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없는 백성은 모두 나라에서 먹여 살리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소문을 듣고 이웃 나라에서 백성들이 몰려 왔다고 한다.

그리고 백성을 위하여 보습(犁?)과 얼음 창고(藏氷庫)와 수레를 만들었다. 는 모두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정치로 훌륭한 일이다.

참고로 『삼국유사』에는 없지만, ‘한가위’도 이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왕궁의 부녀들이 밤낮으로 길쌈내기를 하다가 8월 15일에 길쌈을 적게 한 편이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노래와 춤 그리고 온갖 놀이를 벌이며 즐겁게 놀았다. 이것이 ‘가배(嘉排)’, 즉 민족의 명절, 한가위의 유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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