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좌고우면 않는 소신 강골검사 ‘아이콘’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승진 임명된 윤석열 대전고검 검사가 19일 오후 서울 서초구 특별검사 사무실 앞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
“그냥 물병 하나, 건빵 한 봉지 들고 사막에 가는 기분이다. 하하…”

지난해 12월 막 임명된 박영수 특별검사가 ‘영입 1호’로 윤석열(57·사법연수원 23기) 당시 대전고검 검사를 지목했을 때, 그는 자신의 심정을 이같이 표현했다. 살아있는 권력에 맞섰다가 인사 보복을 당한 그의 굴곡진 검사 생활은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모래 언덕을 묵묵히 홀로 걷는 것과 같았다.

그랬던 그가 19일 ‘검찰의 꽃’ 서울중앙지검장에 전격 승진·발탁된 것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검찰 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윤 신임 지검장 스스로도 이날 기자들과 마주친 자리에서 “갑자기 이렇게 좀 너무 벅찬 직책을 맡게 돼 깊이 고민을 좀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 4학년 시절 사법시험 1차에 합격한 윤 지검장은 이후 9년간 2차에서 연거푸 낙방했다.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에 뒤늦게 합격해 1994년 34세로 검찰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현재 주요 직책에 있는 동기들과 많게는 9살이나 차이가 난다.

‘늦깎이’로 들어왔고 한때 1년간 대형 로펌 변호사로 잠시 ‘외도’도 했지만 윤 지검장은 지난 20여 년 동안 검찰을 대표하는 ‘특수통’ 검사로 이름을 날렸다. 탁월한 수사력과 추진력으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대검 범죄정보2담당관, 중수 1·2과장을 거쳐 2012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까지 역임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신정아씨 비호 의혹, LIG그룹 사기성 기업어음(CP) 발행 의혹 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친 사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오른팔’ 안희정 현 충남지사와 ‘후원자’ 고 강금원 회장을 구속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시련을 안겨준 것은 박근혜 정권 초기이던 2013년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시절 맡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었다. 특별수사팀장으로 임명된 그는 정권의 눈치를 보는 윗선의 반대에도 용의 선상에 오른 국정원 직원을 체포하는 등 소신 있는 수사를 하다가 결국 지방으로 좌천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해 10월 국정감사에 나온 윤 지검장은 수사 강도를 낮추기 위한 검사장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성 주장을 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그가 남긴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그의 대쪽같은 면모를 상징하는 한 마디가 됐다.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고 관련 수사에서 배제됐던 윤 지검장은 대구고검과 대전고검을 전전했다. 당시 함께 징계를 받고 결국 옷을 벗은 그의 ‘오른팔’이 바로 박형철(49·25기) 신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다.

그렇게 ‘관운’이 다 하는 줄 알았던 윤 지검장을 다시 수사 일선으로 불러들인 것은 그와 중수부 한솥밥을 먹었던 박영수 특검이었다. 특검 수사팀장을 맡은 윤 지검장은 물을 만난 고기처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국정 농단’에 연루된 사회 각계 인사들을 거침없이 수사했다. 이는 윤 지검장과 특검팀에 대한 국민의 대대적인 지지로 이어졌고, 결국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

이날 윤 지검장에 대한 인사는 기수와 계급을 대대적으로 파괴하는 인사로 평가된다. 서울중앙지검장은 2005년 이후 고등검사장급이 맡아왔지만, 윤 지검장은 올해 한 계급 아래의 검사장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청와대는 인사 발표와 함께 서울중앙지검장의 직급을 검사장급으로 환원한다고 밝혔다. 이는 고검장급인 서울중앙지검장이 검찰총장 승진을 위해 권력 눈치를 보며 수사 지휘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을 불식하기 위한 조치다.

윤 지검장 개인 입장에서는 중앙지검장 발탁이 ‘기회’이면서도 새로운 ‘도전’이 될 전망이다.

그동안 탁월한 수사력과 추진력은 충분히 검증됐고 이를 인정받아 중책을 맡았지만 ‘초임’ 검사장으로서 검사 240여명을 포함해 직원 1천명 안팎인 전국 최대 검찰청을 이끌게 됐다는 점에서 향후 중앙지검을 어떤 모습으로 지휘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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