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강대국 진나라의 침략 위협에 각 나라들은 전전긍긍했다. 진나라 군사에 의해 포위 당한 조나라의 수도 한단의 함락도 시간문제였다. 쥐를 잡아 먹을 정도로 식량 사정이 극도로 악화, 다른 나라의 원병이 와 주지 않으면 나라의 운명도 끝장이었다. 여러 나라에 구원을 요청했지만 모두가 냉담한 반응 뿐이었다. 절체절명의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조나라 왕족 평원군이 초나라에 구원 요청 특사로 가게 됐다.

수행원 20명을 거느리고 가기로 한 평원군은 자신의 식객 3천 명 중에서 문무를 겸비한 19명을 뽑았지만 나머지 한 사람이 마땅치 않아 고민했다. 그때 모수라는 식객이 수행원을 자청했다. “당신은 내가 모르는 얼굴인데 우리 집에 온 지가 얼마나 됐소” 평원군이 물었다. “3년 됐습니다” “뛰어난 선비는 주머니 속 송곳 같아 반드시 그 끝이 밖으로 나타나기 마련인데 3년이 되도록 내 눈에 띄지 않았으니 별 재주가 없는 것이 아니오” 평원의 면박에 모수가 당당하게 반박했다. “나리께서는 저를 한 번도 나리의 주머니 속에 넣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저를 주머니 속에 넣어주시면 송곳 끝만 아니라 자루까지 통째로 드러내 보이겠습니다” 평원군은 모수의 당찬 기세에 감탄, 그를 수행원에 끼워주었다.

평원군이 초나라 왕을 만나 ‘조초동맹’을 설득했으나 한나절이 지나도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설득이 좌절되면 조나라 사직이 막을 내려야 할 판이었다. 모두가 애를 태우고 있을 때 모수가 돌연 칼자루를 잡은 채 초왕 앞에 다가섰다. “가부 간의 단 한마디면 되는 일을 뭘 꾸물거립니까?” “너의 주인과 얘기 중인데 웬 참견이냐” “지금 대왕의 목숨은 제 손에 달렸습니다. 호위병이 닿기 전에 제 칼이 먼저 대왕의 목에 닿을 것입니다” 모수의 기개와 담력에 감탄한 초왕은 동맹을 승인했다. “이런 인재를 여지끝 몰라보다니, 모수의 세 치 혀가 백만대군보다 강했다” 평원군이 극찬했다. ‘삼촌설(三寸舌)’의 고사다.

한반도 난제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이 미·중·일·러 등 4대 강국에 보낸 특사들의 ‘삼촌설’이 제구실을 다 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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