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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인물] 29. 울진읍

법조계 등 분야별 걸출한 인재 배출한 '호국의 화신' 마을

김형소 기자 khs@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5월23일 19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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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읍은 백두대간의 낙동정맥으로 불리는 태백산맥이 동쪽으로 뻗어 울창한 산림과 시원한 동해가 어우러진 울진군의 중심이다.

인구는 약 1만5천 명이며, 마을 한가운데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한 연호공원과 불영계곡에 있는 대흥리와 신림리는 지역 최고 품질의 송이가 생산된다.

또한 국보 제181호인 장량수급제 패지가 보존된 월계서원이 있다.

울진읍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남대천은 오랜 세월 식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읍내에서 10분 거리인 온양리, 연지리, 읍남리는 동해와 맞닿아 싱싱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울진읍 전경.
△왜군에 맞선 ‘주호’ 장군

임진왜란 당시 행주산성 전투에서 패배한 일부 왜군이 서울을 벗어나 경북 동해안으로 퇴각한 시기에 울진읍 구만동 출신인 주호 장군은 왜군에 맞서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살신성인의 모습을 몸소 실천했다.

주호 장군은 임진왜란을 피해 가족을 이끌고 서면 소광리 안일왕산성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미처 피신하지 못한 일가친척이 왜병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분을 참지 못해 300여 명의 의병을 모집했다.

이후 왜병들이 남무묘법연화경의 주문을 쓴 깃발을 내걸고 쳐들어오자 수십일 간의 격전을 벌였다.

전투가 길어지자 성 내곽의 양식과 물이 떨어지며 왜병들에게 포위당하자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육박전으로 버티다 한 사람도 남김없이 장렬히 전사해 호국의 화신이 됐다.

또한 그의 부인 장 씨는 왜군이 능욕하려 하자 끝까지 기개를 지키며 맞서다 순절했고, 한 왜군이 이 같은 기록을 전해 7년 전란이 끝난 뒤 선조 36년(1603년) ‘봉열대부사재감청정’의 벼슬이 주호에게 부여됐고 부인에게는 영인(令人)이라는 작위가 주어졌다고 전한다.

이 밖에 고종 26년(1889년) 울진읍 정림리에 태어난 무실제 남진영은 한 말의 유학자인 전간제 선생에게 수학해 50여 명의 유생을 배출했다,

남진영은 일본 천황인 명치가 죽자 일본 형사들이 조장을 달고 슬픔에 잠기라고 강요했지만, 끝까지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울진읍 연호정.
△현대사 인물

울진읍은 법조계를 비롯해 경찰, 교육, 경제 등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배출했다.

현 바른정당 당 대표 권한대행을 맡는 주호영 국회의원은 판사 출신으로 대구지법 부장판사, 대구지법 상주지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으로 정치에 첫발을 들인 뒤 대구 수성구를 텃밭으로 4선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성영 전 국회의원은 검사 출신으로 대구고검 부장 검사를 역임했고, 법복을 벗고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재선의원으로 활약했다.

흔히들 지역에서는 두 사람을 두고 ‘창과 방패’ 출신 국회의원으로 평가하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나와 제7회 사법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한 김진세 법무법인 승백 변호사 역시 울진읍이 고향이다.

검사 출신으로 대전고검 검사장과 부산지청 검사장 등 검찰에서 중요 직책을 맡았으며, 황조근정훈장 수상과 ‘한국사회 무엇이 문제인가’와 ‘미완성의 토론’이라는 저서를 발간했다.

전병식 법무법인 한중 대표변호사는 사법고시 20회로 춘천지원 영월지원장과 서울지원 부장판사를 거쳤다.

주상용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고려대 정치외교학교를 졸업했으며, 도로교통 관리공단 이사장과 대구지방경찰청장,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맡았다.

주상봉 현 경기 남부 재향경우회장은 1977년 경찰에 입문한 뒤 경기청 정보계장, 고령경찰서장을 역임한 뒤 2014년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현재는 경기 남부 재향경우회장과 용인시 인재육성재단 이사장을 겸임하며, 미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글로벌 리더 육성에 힘을 보태고 있다.

박영무 아주대(기계공학부) 교수는 세계적인 출판사인 Springer사와 친환경 신에너지와 관련해 출판 계약을 맺을 만큼 국내 에너지 분야 전문가로 손꼽힌다.

동국대 경주캠퍼스 초대 총장을 지낸 김용택 박사는 동국대 사회복지과 교수를 비롯해 청호불교문화원 불교복지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에는 자신이 평생 모은 사회복지학 분야 일본어 원서 600여 권과 불교 연구 서적 200여 권 등 3천여 권의 전문 서적을 건양대학교에 기증한 바 있다.

공시 3관왕의 신화를 쓴 박광무 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은 9급에서 출발해 7급, 5급 시험에 잇따라 합격했다.

황태성 국민은행 부행장은 1981년 국민은행에 입사해 울진지점장과 서울 동부산업영업지원본부장을 지냈다.

남용 대림산업 고문은 LG전자로 입사한 이후 LG텔레콤 사장, LG그룹 전략사업 담당 사장, LG전자 부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대림산업 고문뿐 아니라 포스코 사외이사도 맡고 있다.

장상욱 제이앤티씨 대표는 1996년 기업을 설립해 스마트 기기 관련 커버글라스 등을 생산하고 있다.

오는 2020년 매출 1조 원 달성을 목표로 하는 장상욱 대표는 독보적인 기술로 일류기업 달성을 꿈꾸고 있다.

일반대중에게도 친숙한 주류유통업체인 ‘가자 주류’ 설립자인 임동혁 사장은 40년간 유통업계에 종사해왔고, 서울시 골프협회 이사와 JC 전국대표 및 서울대표를 맡는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이어왔다.

1980년대 현대자동차 배구단 슈퍼리그 3연패의 주역인 이만근 전 배구 국가대표도 울진읍이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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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소 기자

    • 김형소 기자
  • 울진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