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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미 의회에 보낸 ‘소비자의 이익보호에 관한 특별교서’를 소비자의 권리에 대한 최초의 논의로 보는데 이론이 없다. 이 교서(敎書)는 소비자가 ①안전해야 할 권리(the right to be safe), ②알아야 할 권리(the right to be informed), ③선택할 권리(the right to choose), ④의견을 반영시킬 권리(the right to be heard)를 가진다고 선언하였다. 국제소비자연맹(IOCU)은 위 권리 외에 손해배상이나 구제조치를 받을 권리나 교육의 권리 및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 등 여덟 가지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소비자보호법이 있다. 소비자보호법도 모두 여덟 가지의 권리를 선언하고 있는데 ①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위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②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제공 받을 권리, ③자유로이 선택할 권리, ④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사업자의 사업 활동 등에 대하여 의견을 반영시킬 권리, ⑤입은 피해에 대하여 신속·공정한 절차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을 권리, ⑥필요한 교육을 받을 권리, ⑦단체를 조직하고 이를 통하여 활동할 수 있는 권리, ⑧안전하고 쾌적한 소비생활 환경에서 소비할 권리가 바로 그것이다.

소비자보호법상의 권리를 떠올리면서 먼저 핸드폰을 예로 들어 보자. 지난해 갤럭시노트 7의 배터리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전격적 판매 중단 조치가 내려짐으로써 일단 ‘소비자의 안전’은 지켜지게 되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사고의 원인과 문제 해결 수준 등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충분히 제공 받지는 못하였다. 자유로운 선택권의 제한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른바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인하여 소비자들은 이통사나 단말기의 선택을 실질적으로 강요받고 있다. 그리고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시키거나 피해에 대하여 선진화된 단체소송을 통한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묻는 일은 요원한 실정이다.

소비자보호법은 물론 정치에도 대입이 가능하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재화와 용역의 소비자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정치 소비자이다. 국민은 정치의 소비자로서 정치의 공급자들에게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며 그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아야 한다. 새 대통령이 취임한 후 불과 며칠 만에 북한이 미사일을 처음 쏘았을 때 자유한국당은 북한을 비난하는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이 (인수위도 없이 취임한) 대통령을 겨냥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그들의 억지 주장보다는 청와대가 분 단위로 대통령의 대응을 신속히 브리핑한 것이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직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였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한반도 전술핵 배치나 선제 타격론을 주장하거나 이에 동조한 바 있다. 이런 주장은 국민의 ‘생명·신체 또는 재산에 대한 위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 그들은 “평화를 위하여 전쟁을 불사하여야 한다”고 소리치지만 ‘평화를 위한 전쟁’이란 것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국회에서의 충분한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오히려 중국 정상을 만났을 때나 국회 대정부 질문의 답변과정에서 그럴 계획이 없다고 말한 지 며칠 만에) 말뚝 박기 식으로 사드(THAAD) 도입을 전격으로 발표하고 성급히 이를 배치한 것은 정치 소비자인 국민이 가지는 ‘안전에 대한 권리’ 외에 ‘필요한 지식 및 정보를 받을 권리’까지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다. 나라의 큰 걱정거리가 하루라도 빨리 해소되기를 바란다.

5월 23일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8주기였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라는 노무현의 외침은 “국민 모두가 ‘깨어있는 정치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는 따가운 가르침으로 우리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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