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역사적 고증 필요성 대두…신부조장터공원 핵심사업 돼야

▲ 현재 만귀정 전경.
포항시가 ‘형산 신부조장터공원 및 뱃길복원사업’을 본격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부조장터와 형산강을 굽어보고 있었던 만귀정(萬歸亭)의 이전 복원이 시급하다.

조선시대 3대 시장으로 번창한 부조장터 복원에는 만귀정과 인근에 방치돼 있는 보부상 도접장 ‘좌상대도접장김이형유공비(左商隊都接長金公以亨有功碑)’의 복원으로 역사적 고증을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 되고 있다.

만귀정은 본래 형산강 제산 기슭에 지어져 형산강을 조망하는 유금리 153번지 자리에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됐다가 경주~포항간 국도를 확장하면서 발굴해 형산강이 보이지 않는 유금리 96번지 마을 안에 이전됐다.

따라서 이번 부조장터 복원사업에 형산강이 보이는 곳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만귀정’은 포항시 연일읍 유강리와 경계한 경주 강동면 유금리 형산강 변에 ‘회만귀일(會萬歸一)’ ‘만 가지가 모여서 하나로 돌아 간다’는 뜻을 취해 조선 시대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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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98년 발굴된 만귀정 터. 동국대 경주캠퍼스 제공
조철제 경상북도 문화재전문위원은 “경주의 수많은 산천의 물이 형산강에 모여들어 큰 강줄기를 형성한 뒤 동해로 흘러들어 간다. 이를 ‘회만귀일(會萬歸一)’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만귀정(萬歸亭)’이란 이름을 취한 것이다. 앞에 펼쳐진 넓은 들녘과 넘실거리며 들어오는 강물은 진작부터 동도(경주)의 제일 승지로 평가됐다. 또한 다채로운 사계절의 변화와 항구에서 올라오는 상선의 노래 소리가 멎는 곳이다”고 말하고 있다.

이같이 수많은 갈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여들어 오듯 정자의 주인 장유량(蔣惟亮)은 만인(萬人)이 귀의할 만큼 인품과 덕행이 지녔다는 의미에서 제명된 것이다. 장유량은 아산 장씨의 입향조인 만호 장문헌의 손자이다.

장문헌이 입향한 것은 인조 26년(1648)이고, 정자를 창건한 것은 효종 6년(1655)이라고 정극후의 서문은 밝히고 있다. 영조 39년(1763) 제작한 ‘경주부도(慶州府圖)’에 만귀정은 계정(溪亭)과 같이 뚜렷이 표시돼 있다.

그 후 금파 이정병(1759~1834)이 지은 중수기가 있다. 정자는 중간에 잠시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됐다가 다시 후손들에게 넘어왔다. 이 과정에서 심하게 훼손됐는데 19세기 초에 다시 중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904년 화재로 안타깝게 소실됐다.

본래 정자는 유금리 153번지에 있었다. 1998년 5월 경주~포항간 도로를 확장하면서 동국대학교에서 만귀정 터를 발굴했다. 지하 1m에 주춧돌과 많은 기와, 토기, 불에 탄 목재가 출토됐다. 그 후 1992년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 96번지 현재 자리로 옮겨 옛 정자의 정(丁 )자형을 본떠 새로 지었다. 오천 출신인 조선중기 문신‘오천자’ 정극후는 만귀정기에서 만귀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동남의 모든 산은 형산강을 향해 있고/맑은 기운 천년토록 이곳을 지켜 주었네/몰래 아껴서 손님 대접하려고 좋은 경치 남겼다가/측량하고 땅을 파서 맑은 하늘 위에 지었다네/차가운 물 맑은 빛은 푸른 하늘과 이어 지고/모랫가 백조는 쌍쌍이 한가로이 나는구나’

한편 포항시는 지난 5월 11일 경북도관광공사와 형산강 신부조장터공원 및 뱃길복원사업 위·수탁 협약식을 체결하고‘형산 신부조장터공원 및 뱃길복원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형산 신부조장터공원 및 뱃길복원사업은 민선6기 들어서 포항·경주 자치단체간 상생협력 공감대가 형성, 형산강 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한 사업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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