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家) 자를 파자하면 지붕 아래에 돼지가 오글오글 들어있는 형상이다. 옛날 사람들이 남에게 자기 아들을 낮추어 부를 때 ‘가돈(家豚)’이라 했다. 돼지를 부르는 이름 또한 많다. 돼지 돈(豚)이 있고, 시(豕)가 있다. 몸집이 적은 야생돼지를 저(猪)라 하고, 큰놈은 희(豨)라 불렀다. 이렇게 부르는 이름이 세분돼 있는 것을 보면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돌적(猪突的)이란 말이 있다. 글자대로 ‘멧돼지가 돌진하는 것 같다’는 뜻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것을 말한다. 멧돼지는 부상을 당하거나 위기를 만나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돌진해 들이받는다. 멧돼지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받히면 동물이든 사람이든 치명적 상처를 입는다. 그래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비는 것을 ‘저돌적’이라 하는 것이다.

최근 연세대 교정에 나타난 멧돼지처럼 민가로 내려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심지어는 사람을 해치기까지 한다. 돼지는 다산의 상징일만큼 한 배에 많게는 10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여기에다 호랑이 같은 천적이 없어서 전국 산천에 급속하게 마릿수가 늘고 있다. 환경부는 전국에 어림잡아 30만 마리 정도의 멧돼지가 살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농촌에서 멧돼지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 안동의 땅콩밭에는 땅콩이 달리기도 전에 멧돼지떼가 내려와 싹쓸이를 했다. 문경의 한 양파밭에도 멧돼지가 들어 양파를 온통 못 쓰게 짓밟아 놓았다. 양파밭의 지렁이와 굼벵이를 파먹느라 온 밭을 뒤진 것이다. 이런 피해를 경북도가 조사해 봤더니 2014년 10억4천700만 원, 2015년 11억3천200만 원, 2016년 12억7천900만 원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멧돼지를 줄이기 위해 도가 권역별로 순환수렵장을 열고 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 2월까지 김천, 구미, 상주 등 7개 시·군에서 순환 수렵장을 운영해 멧돼지 3천718 마리를 포획했다. 하지만 멧돼지 피해는 줄지 않고 있다. 조선시대에 전국에 호랑이 피해가 심해 특별 군사를 뽑아 ‘착호갑사(捉虎甲士)’를 꾸렸다. 멧돼지를 줄이기 위해 ‘착저갑사(捉猪甲士)’ 부대라도 창설해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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