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기그릇 같은데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퍼서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2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감상) 먼저 살다 간 사람이 벽에 남기고 간 못 자국. 거기에 무엇이 매달려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옆으로 아래로 구멍은 일그러져 있다. 저 작은 몸이 지탱했을 그 무엇., 그것이 빠져나갔으니 얼마나 가벼워졌을까 생각하다 알게 된다. 저 작은 구멍은 지금도 여전히 저 벽 전체를 제 몸에 걸고 있다는 것을.(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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