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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전 검찰총장
虞時二女竹 (우시이녀죽·순임금 때의 두 열녀의 반죽(斑竹)이요)

秦日大夫松 (진일대부송·진시황 때의 대부 벼슬 받은 소나무이니)

縱有哀榮異 (종유애영이·비록 슬프고 영화로운 것이 다르긴 하지만)

寧爲冷熱容 (영위랭열용·어찌 차거나 뜨거운 얼굴을 나타낼 필요가 있겠는가)






저헌(樗軒) 이석형은 세종 23년(1441)에 생원·진사 두 시험에 이어 이듬해 식년 문과에도 장원을 하여 이름을 드날렸다. 좌정언 지제교를 거쳐 집현전 교리 등으로 집현전에 근무하면서 성삼문 등 동료 학사들과 깊은 교분을 나누었다. 세조 즉위 후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됨으로써 14년간의 집현전 생활을 마감했고, 이어 전라감사, 형조참판, 대사헌, 팔도도체찰사, 판중추부사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그는 천성이 관후하면서도 공사가 분명하고 논의가 의연하면서도 공평하여, 수양대군 집권 시나 단종 복위운동 시 많은 사람들, 특히 집현전 출신들이 더러는 혹화를 입고 더러는 영달할 때 권력을 잡은 쪽도 그를 굴복시킬 수가 없었고, 참소를 잘하는 쪽도 그를 이간시킬 수가 없었다고 하니, 평소의 처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이 시는 저헌이 전라감사로 재임 시 익산을 순찰하던 중 육신(六臣)이 참혹하게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익산 동헌에 써 붙인 것이다.

‘이녀죽(二女竹)’은 중국 순임금이 죽자 두 왕비 아황과 여영이 상강에서 자결하면서 뿌린 피눈물이 대숲에 맺혀 반죽(斑竹)이 되었다는 고사이고, ‘대부송(大夫松)’은 진시황이 태산에서 큰비를 만나 다섯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할 수 있게 되어 벼슬을 내린 소나무를 말한다. 즉 전자는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처형된 전 동료 성삼문 등을 비유한 것이고, 후자는 세조의 왕위 찬탈 등을 도와 영달한 전 동료 신숙주 등을 비유한 것이다.

전자의 죽음이 참으로 슬프고, 후자의 영화가 지극히 기쁜 것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모두 자신의 뜻에 따랐다면 슬퍼서 창백해질 것도 없고 기뻐서 흥분할 것도 없다는 내용이다. 말하자면 늘 선택해야 하는 우리의 인생에서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했으면 그만이지 특별히 슬퍼하고 기뻐할 게 뭐 있느냐는 것이다.

염량세태(炎?世態·세력이 있을 때는 아첨하여 따르고 세력이 없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상인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에 부화뇌동하여 권세에 아부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는가. 각자는 이에 동요하지 말고 맡은 바 본분사에 최선을 다하자는 내용의 시로 보이지만, 이 시 역시 곧바로 고변되어 처벌이 주청되었으나, 세조가 “이 시는 시인으로서 영물(詠物)한 것에 지나지 않는데 깊이 추궁할 필요가 있겠느냐”면서 논의를 덮었고, 그는 오히려 세조대에 크게 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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