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화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을 처음 본 강원도 양구의 한 산골 소년의 가슴은 뛰었다. 그 소년은 이 그림을 본 후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나이가 겨우 12살이었다. 그는 농업과 사업을 같이 하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 형편이 급격하게 나빠져서 중학교 진학도 포기한 채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했다. 그 소년은 6년 만에 꿈을 이뤄냈다. 조선미술전람회에 ‘봄이 오다’를 출품해 입선한 것이다.

그가 바로 ‘한국의 밀레’, ‘가장 한국적인 국민화가’,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린 화가’로 불리는 박수근(1914~1965) 화백이다. 박수근 작품의 특징은 독특한 화면의 질감과 대상을 선묘로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그렸다는 점이다. 박수근의 그림을 들여다 보면 냇가 화강암의 표면 같은 우툴두툴한 화면에서 문신처럼 선들이 스며들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옛날 어른들이 ‘쑥돌’이라 부르던 화강암에는 회색빛이 감도는 쑥색이 옅게 점점이 박혀 있다. 이런 쑥돌 같은 화면 바탕에 선묘로 단순하게 사람과 나무 등을 그린 것이 ‘박수근 화법’의 특징이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시장 좌판의 아낙네나 아이들, 노인 등이다. 그는 전쟁이 할퀴고 간 삶의 현장에서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아낙네와 아이들, 노인들의 모습을 지극히 애정 어린 시각으로 담아냈다. 나무를 그려도 잎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나목을 그렸다. 나목의 가지는 심하게 잘려나가고, 굴절됐다. 갈등과 궁핍한 사회의 표상으로 그려진 나목들이지만 살풍경이기 보다는 따뜻함이 배어 있다.

박수근은 신라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우리나라 석조미술품에서 아름다움의 원천을 느낀다”고 했다. 화강암에 새겨진 불상과 석탑에서 얻은 영감으로 ‘박수근표 질감’이 탄생 된 것이다. 박수근이 경주를 답사하며 직접 찍은 탁본이 수십 점이나 된다. 이런 점에서 경주는 박수근 화풍의 근원지다. 경주엑스포공원에 있는 솔거미술관에서 ‘신라에 온 박수근’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빨래터’, ‘앉아 있는 여인’, ‘좌판’, ‘나무와 여인’ 등 그의 대표작들이 망라됐다. 놓쳐서는 안될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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