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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새경북포럼 포항지역위원·시인
이즈음 장미의 계절이다. 아파트 담장 위로 헤살대는 자태를 보면 꽃의 여왕이란 표현이 실감 난다. 까치발로 바깥세상을 동경하는 아리따운 처녀 같다. 허름한 주택가 뜨락의 붉디붉은 꽃송이와 진녹색 이파리 언저리엔 집주인의 품격이 은은하다. 꽃밭을 가꾸는 심성을 지닌 이는 몸가짐 또한 정갈하지 않으랴.

장미를 빼고 서양 문학을 논하는 것은 달을 없애고 이태백을 말하는 것과 흡사하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중세 교회의 독선을 묘사한 작품. 그는 장미 전쟁이나 장미 십자회 같은 시대적 상징성을 감안해 당초의 제목을 바꿨을 정도다. 장미는 누구나 예뻐한다. 하지만 줄기에 간직한 가시까지 좋아하긴 쉽지 않다. 진정한 사랑은 이면의 불편도 포용하는 가슴이 아닐까 싶다.

영어 공부 겸해서 미드를 자주 시청하는 편이다. 미국 과학수사 드라마 가운데 CSI는 흥미진진한 장면이 많다. 뉴욕 특파원 시절의 어느 기자가 경찰을 인터뷰한 내용에 의하면, CSI에 등장하는 다양한 수사 기법은 실제라고 전한다.

CSI 엔드게임 편에는 그 절정이 방영된다. 진짜일지 고개가 갸우뚱할 정도로 놀랍다. 살인 사건과 관련된 두 남자가 온실 안에서 언쟁을 벌인다. CCTV로 녹화를 분석한 요원들. 그들의 주변에 놓인 화훼 잎사귀의 미세한 떨림을 포착하곤, 대화 내용을 복원하여 범행 단서를 잡는다.

무심한 듯 제자리를 지키는 식물도 정신세계가 있을까. 보거나 듣지는 못해도 근원적인 기운을 감지하고 반응한다는 사례는 많다. 범인의 격렬한 말싸움에 감응을 나타낸 화초는 뜻밖의 목격자가 됐다. 홍당무는 토끼가 지나가면 사색이 된다고 한다. 이는 수차례 증명된 사실이기도 하다.

가랑비 흩날리는 해발 650m 경상북도수목원. 고산 지대라 반소매 셔츠엔 한기가 스민다. 우중의 숲길은 초록빛 더한층 선명할 뿐 아니라 분위기 역시 차분하다. 토닥토닥 빗소릴 들으며 탐방하는 여유로움은 신선놀음에 진배없다.

수목원은 관찰이나 연구의 목적으로 갖가지 나무를 재배하는 시설을 일컫는다. 정원이나 공원, 그리고 국립공원의 연장선에 있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정원은 애초 귀족만이 향유하는 은밀한 공간. 차츰 서민들에 개방하면서 공원이 됐고, 국가가 적극 관리하는 국립공원이 생겼다.

미국은 그 종주국. 세계 최초로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지정했다. 일상적 삶에서 공원의 중요성은 불문가지다. 뉴욕시민의 90% 이상은 경찰서나 소방서 못지않게 공원이 필수라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우리는 1967년 지리산을 시작으로 작년의 태백산 국립공원까지 22개를 가졌다.

식물은 경이롭다. 독야청청 혼자인 듯 여겨지나 상생의 배려를 발한다. 나무는 흔들리지 않아서 강한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울려서 강하다고도 말한다. 해설가의 재미난 얘기를 곁들인 숲은 유익한 자연생태 학습이다. 바늘 모양 잎의 숫자를 보고 침엽수를 구분하는 방법, 카사블랑카·블랙아웃·라만차 등속 백합 품종들, 그리고 매발톱·만첩빈도리·뿔남천 같은 낯섦은 호기심이 차오른다.

사족을 덧붙인다. 수목원 안쪽에 전시된 ‘너와집’ 안내판에 오류가 발견됐다. ‘너와란 ∼ 널판지’라는 설명에서 ‘널판지’는 잘못이다. ‘널빤지’가 정당하다. 언어에 예민한 글쟁이라 문득 눈에 띄었다. 수많은 학생도 관람하는 탓에 정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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