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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새 정부 들어 고위직 인사청문회가 진행 중입니다. 총리, 장관 후보자들의 집안사가(병역회피, 세금탈루, 위장전입 등) 여론의 검증대 위에 올라 있습니다. 늘 보던 풍경입니다. 새 정부라고 해서 특별하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불법과 위법의 도가니였다는 말이 됩니다. 그 탁한 물에서 살아온 사람치고 속까지 깨끗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정도 자리에까지 오른 사람들이라면 부득불 이심전심, 동병상련하는 문제겠습니다. 심지어는 “최소한 위장전입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야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 “위장전입을 불법화한 것이 잘못이다”, “위장전입에도 등급(선악 구별이 되는)이 있다”는 말까지 돌아다닙니다. 그런 말 아닌 말들을 듣고 있으려니 시골 무사로 공직 경력 30년째인 저로서도 아주 기분이 씁쓸합니다. 아예 법을 바꾸든지, 아니면 죽을 각오로 원칙을 고수하든지, 양단간 독한 수를 써야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후손들에게 나라다운 나라를 물려주려면 그 길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공직자에게는 세속적인 이해타산과 관계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수행자의 태도가 꼭 필요합니다. 그게 세금을 받아 먹고사는 공직자의 도리입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숫타니파타의 말씀입니다. 법정 스님이 이 말씀을 사랑해서 거처하시던 방에 적어 붙여 놓았었습니다. 내친김에 인터넷 검색을 해서 이 난국에 꼭 새겨들을 말씀을 찾았습니다.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라’는 말씀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습니다. 공자님도 그 비슷한 말씀을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군자는 홀로 있더라도 도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요. 예수님도 그랬지 싶습니다. 자나 깨나 늘 기도하라는 말씀이 결국 그 뜻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연결되니 오직 홀로 행하고 게으름을 멀리하는 것만이 인생 불멸의 금과옥조(金科玉條·금이나 옥처럼 귀히 여겨 꼭 지키는 법이나 규정)인 것 같습니다. 사자나 바람이나 연꽃이나 무소의 뿔과 같은 비유들은 그 금과옥조를 지켜내는 각오나 태도에 대한 설명입니다. 한때는 비유에 이끌려 이리저리 쏠리는 것을 창피하게 여긴 적도 있었습니다만 나이가 좀 드니까 그런 생각도 많이 줄어듭니다. 그때그때 내게 필요한 것은 바로바로 잡아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법정 스님처럼 고명한 스님도 ‘써서 붙여 놓을 일’이 있었다는 게 신기합니다. 저도 그런 짓을 많이 했습니다. 의지박약하고 놀기 좋아했던 처지라 스스로 그렇게라도 독려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지금 제 책상 앞에는 오직 달력 한 장만 붙어 있습니다. 근 50년 동안 책상 앞을 어지럽혀온 ‘부적’들이 지금은 한 장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의지대로 모든 일이 순탄하게 실행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의지는 의지대로, 몸은 몸대로 따로 노는 것은 여전합니다. 다만, 하는 일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습니다. 더 이상 ‘그물에 걸릴’ 것 하나 없는 처량하고 쓸쓸한 신세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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