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저쪽에서 오고 있었다
공기는 잠시 가던 길을 멈췄고
인파 속에서 고갤 갸웃거렸다
그는 불행히 발견되지 않았다
고로, 어떤 발생도 하지 않았다
모든 빛은 그늘이 남긴 배경이므로,
명백한 저녁을 그린 화가는 없다

(중략)

그는 쓸데없는 안부를 생략한다
공장 굴뚝은 비약하는 고체의 빗줄기
안개의 기록은 이제 그만하기로 한다
울지도 웃지도 않는 이 세계에서
어떤 그림은 도저한 패국을 완성한다
우체국 직원은 더 이상 슬프지 않다
토근 무렵의 종이 박스는 딱딱한 표정이다
몰락을 그리는 화가는 흔해 빠졌다




감상) 현대의 그는 경계에 선 사람이고 그를 바라보는 나는 어느 쪽이든 경계의 바깥에 있다. 그는 너무나 딱딱해서 물방울이 닿지도 못하지만 실은 그는 물로 만들어진 형체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견고해서 내 손가락이 젖지도 못한다 현대의 그는 울거나 웃었으면 좋겠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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