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의 영원한 ‘캡틴’ 박지성은 한국 축구의 아이콘이었다.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산소탱크’ 박지성은 한국인 프리미어리그 1호로 한국인의 자부심을 끌어올려 축구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2017년 5월 19일 31년간 유지해 오던 한국 축우의 전설 차범근의 기록이 깨졌다. 새 전설을 쓴 주인공은 독일 축구 영웅 베켄바워가 ‘슈퍼 플레이어’라고 격찬한 손흥민이다. 이날 경기에서 시즌 21호 골을 넣어 차범근의 19골을 제치고 한 시즌 최다 골을 기록,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쓴 선수로 우뚝 섰다.

한국 축구는 대략 10년 주기로 슈퍼스타를 배출해 왔다. 해방 이전 40년대 김용식, 50년대의 최정민, 60년대의 이회택, 70년대 차범근, 80년대 최순호, 90년대 황선홍, 2000년대 초입 박지성, 그리고 10년 뒤 손흥민으로 이어졌다.

김용식이 66년 월드컵 참관차 영국에 들렀다. 김용식과 조우한 북한 대표단이 선수단 격려를 부탁하면서 “우리 민족 중에 축구 하면 김용식 아니냐”며 김용식의 명성과 실력을 칭찬했다. 제1회, 2회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의 주역인 최정민의 별명은 ‘황금의 다리’다. 동아시아의 축구기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소년 시절부터 경기도 김포 바닥의 축구 천재란 소리를 들은 이회택은 60년대 한국 축구의 히어로였다. 상대편 선수들 사이를 종횡무진 헤집고 다닌 그의 현란한 개인기는 감탄의 대상이었다. 70년대 한국 축구의 대들보였던 차범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 ‘차붐(Cha boom)’선풍을 일으켰다.

1981년 호주 세계청소년축구대회서 이탈리아와의 첫 경기에서 두 골을 넣은 최순호는 유럽에서 상품가치가 높은 선수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폴란드와의 경기서 첫 골을 장식한 황선홍을 상징하는 단어는 ‘투혼’이다. 미국과의 접전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고 뛰던 황선홍의 투혼이 아직도 생생하다.

유럽 축구계의 중심부에 진출한 최초의 한국인 박지성은 슈퍼팀 주전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아시아인이다. 한국 축구의 ‘돌연변이’로 불리는 손흥민에 대해 이영표 축구해설가는 “2, 3년 안에 유럽 무대 최고의 공격수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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