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을 나서면
정체불명의 남성이었다

나이도 꿈도 취향도 알 수 없이
치솟은 남근이었다

나는 집만 나서면
먹이를 좇는 음흉한 시선이었고
싸지 못하면 망토라도 벗고 싶은
바바리맨이었으며, 어느 밤길 위험한 욕망이었으며
남의 여자를 탐하는 이웃집 남자였으며
젊은 여성만 탐하는 늙은 짐승이었으며
몇 번 탐하고 나면 심드렁해져
또 다른 식민지를 찾는 끝없는 정복자였으며

(중략)

제국주의 폭력과
자본의 폭력과
내 안의 가부장적 폭력이 다르지 않음을 알았지만
결코 가부장 남성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던
나는 다만 기회가 많지 않았을 뿐이다

존엄할 기회가 아닌
타락할 기회가



감상) 거리마다 웃으면서 걸어 다니는 사람들. 파란 신호등을 잘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휠체어를 타고 오는 사람에게 길을 잘 내 주기도 하는 사람들. 공원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떠는 사람들. 수다 떨면서 먼 곳을 보기도 하는 사람들. 그 모두가 한 때는 열악했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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