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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홍 자유여행가·시인
‘자선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음’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정의한 기부의 뜻이다. 그렇다면 요즘 여기저기서 들리는 재능기부의 뜻은 무엇일까. 이 신조어의 뜻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 한국어판에는 ‘개인이 가진 재능을 개인의 이익이나 기술 개발에만 사용하지 않고 이를 활용해 사회에 기여하는 새로운 기부 형태’ 라고 설명하고 있다.

재능기부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기부라는 용어가 들어가 있는 만큼 ‘재능기부’는 사회에 기여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가난한 ‘재능기부자’가 자신보다 훨씬 사정이 나은 ‘특정 기업이나 공공기관, 단체 등에 기여’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잦다. 기업이나 공공기관, 단체가 재능기부자를 모집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기업이나 공공기관, 단체가 재능을 기부할 사람과 기부받을 사람을 찾아 둘 사이를 연결(중개)해주는 경우다. 기업·공공기관·단체는 재능기부자에게 재능기부 증명서를 발급해주거나 약간의 실비(도저히 ‘대가’라고 할 수 없는)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공공기관·단체는 역시 재능기부자와 마찬가지로 금전적 이익을 얻지 못하므로, 자신들도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전부일까. 해당 기업·공공기관·단체는 금전적 이익 대신 ‘재능기부를 실천한 기업 또는 공공기관’이라는 이미지를 얻는다. 재능을 기부받은 당사자들도 기부자보다는 해당 기업·공공기관·단체를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둘째는, 해당 기업·공공기관·단체에 재능을 기부할 사람을 찾는 경우다. 이에 대해서는 ‘인건비 절감을 위해 재능을 갈취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첫 번째 경우의 기업·공공기관·단체는 간접적 이익(이미지 제고)을 취득하는 데 불과하지만, 이 경우에는 직접 금전적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시민사회단체들이 재능기부라는 명목으로 인건비를 아끼려는 행태가 있다고 토로한다. “행사 기획 단계에서 인건비 이야기가 나오면 ‘이 부분은 재능기부로 충당하자’는 제안이 스스럼없이 나온다. 좋은 일에 쓰겠다며 글 써달라, 그림 그려달라는 부탁을 다들 너무 쉽게 한다. 하지만 ‘돈을 얼마 못 드립니다’와 ‘재능 좀 기부해라’는 엄연히 다르다. 이것은 노동의 인식에 대한 문제다” 이처럼 재능기부에 대한 논란이 거센 분야는 아무래도 예술계다. 예술 분야의 재능을 기부받고 싶어 하는 곳이 많고, 기본적인 생계유지도 어려운 예술인이 많다. 둘을 종합하면, 안 그래도 먹고 살기 어려운 예술인들에게 재능을 기부하라고 요청하는 곳이 많다는 이야기다.

재능기부와 관련된 예술계 종사자들의 증언에는 공통점이 있다. 재능기부 유경험자 중에는 기부를 자발적으로 하기보다 반강제로 한 경우가 더 많았다. 기부 요청자와 예술계 종사자의 대화는 주로 다음과 같은 식으로 흘러간다. “여보세요. 님이시죠.” “예, 맞는데요. 누구세요?” “님께 그림(글, 사진, 일러스트, 캘리그래피) 좀 부탁을 드리려고요.” “보수가 어떻게 되나요.” “죄송하지만 저희가 돈이 없어서요. 재능기부 좀 해주셨으면 해요.”

이 단계에서 예술가는 본인의 재능을 기부할지 말지를 결정한다. 만일 예술가가 재능기부 요청을 거절할 때, 대화는 둘 중 하나로 이어진다. “예, 알겠습니다”라며 상대가 전화를 끊으면 다행이지만, “다 ‘좋은 일’하자는 건데요.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요”라며 도리어 상대를 언짢게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재능기부를 요구하는 쪽의 ‘좋은 일’이 정말 좋은 일일 경우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이른바 ‘윈-윈 거래’를 내세운 ‘보수 없는 구인 요청’이 재능기부자 모집 공고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다.

평소 영상 촬영과 관련된 재능기부 요청을 많이 받는다는 L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신이 재능기부나 봉사를 제안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이라는 글이 올라온 것을 보았다. 한마디로 봉사는 어차피 자원하는 것 아니냐면서 ‘자원봉사’ 대신 ‘봉사’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운동 플랜B 홈페이지(nowplanb.kr)에도 게재된 이 글에는 많은 독자가 ‘좋아요’를 눌렀다.

당신이 재능기부나 봉사를 제안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잘 알지도 못하면서 초면부터 재능기부를 요구하지 마라 △기부자가 업으로 삼고 있는 일은 되도록 재능기부로 요구하지 마라 △재능기부나 봉사를 권했을 때 상대가 머뭇거린다면 다른 이를 알아보라. 상대가 곤란하다는 뜻이다 △재능기부나 봉사가 필요하면 되도록 공고 형식으로 알려라. 자발적으로 기부자가 직접 움직이는 게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재능기부를 요구하면서 ‘허세’를 부리지 마라. 차라리 돈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 △교통비 정도는 지급해라 △식사는 꼭 챙겨줘야 한다 △자원봉사자를 ‘자봉’이라고 성의 없이 줄임말로 부르지 마라. 차라리 ‘봉사자’라고 해라 △기부자·봉사자에겐 책임의 의무가 없다. 책임이 필요한 일에는 정당하게 노동의 대가를 지급해라 △ 나중에라도 ‘보상’이 될 만한 대형 프로젝트가 생기면 재능기부자에게 맡겨라. 무급으로 기부·봉사시키다가 제대로 큰돈 쓸 때 업체에 맡기는 경우를 보면 허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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