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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전 검찰총장
願以一人 治天下 (원이일인치천하·원천하는 한 사람이 책임지고 다스리되)

不以天下 奉一人 (불이천하봉일인·천하가 한 사람만을 받들게 하지는 마소서)




중국 청나라 옹정제 세종(애신각라 윤진(愛新覺羅 胤禛))이 자신의 집무실인 양심전(養心殿 )기둥에 걸어 놓고 늘 되새겼다는 글귀이다.

‘위군난(爲君難·군주 노릇 하기 어렵다)’과 더불어 그의 심경을 잘 표현하는 말이다. 천하는 전적으로 선의의 사람인 그가 다스리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천하의 백성을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온갖 어려움과 억측을 딛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이러한 자부심을 지키기 위하여 노심초사하였는데, 불교적 민본주의의 바탕 위에서 개인적인 애욕은 철저히 억제한 채 민생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으며,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 가며 하루 스무 시간 가까이 정무를 처리했다. 일일만기(一日萬機)의 자세로 무려 수천 명의 사람들과 일대일로 문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통치를 했으니(‘주비유지(硃批諭旨)’), 하루 스무 시간도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아버지 강희제나 그의 아들 건륭제는 자주 강남으로 남순을 가고 북쪽으로 수렵을 다녔지만 그는 고작 원명원으로 향했다.

‘원경십이영지 심류독서당(圓景十二咏之 深柳讀書堂 : 鬱鬱千株柳( 무성하게 늘어졌구나, 천 그루 수양버들) 陰陰覆草堂 (서늘한 그늘이 초당을 덮고 있네) 飄彩拂硯石 (나부끼는 실가지는 책상 위의 벼루를 떨고) 飛絮點琴床 (흩날리는 버들개지는 거문고 받침대에 쌓인다) 鶯?春枝暖 (꾀꼬리 노래에 봄 가지도 따뜻해지고) 蟬鳴秋葉凉 (매미 울음소리에 가을 잎도 서늘해지네) 夜來窓月影 (밤이 되면 창에는 달 그림자) 掩映簡編香 (옛 책의 향기를 못내 가리는구나))은 그가 매우 좋아했다는 원명원 내의 심류독서당을 읊은 시이다.

그는 가장 선의의, 그러면서도 가장 완벽한 전제군주를 꿈꾸었다. 실제로 그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관료 사회의 부패를 일신하고 국부를 크게 축적하여 후대의 강역 확장과 문화 증진에 밑거름 되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부족하다는 조급함에 때로는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독선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고, 지배층인 선비와 대상인 집단을 그들의 세력과 영향력을 간과한 채 종교적인 선악의 관념에 의한 당위만으로 양단하려 했다. 그런 데다가 그는 폐쇄적 완벽주의자로서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누구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고, 스스로는 늘 외로움과 부족함, 그리고 초조함에 지쳐 있었다. 이 엄청난 부담을 여인의 분 냄새에 파묻혀 잊어 보려 했지만 그게 가능한 때가 있기나 했던가. 그의 황제 등극이나 죽음이 모두 미스터리로 남은 것이 오히려 이 가련하고 처절한 사내의 삶의 노정에 위안이 될 듯하다.

역사가 오랫동안 그를 잔인하고 무도한 독재군주로 평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니, 인간사를 선악의 관념으로만 재단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고로 말이나 글 또는 양식을 과점하고 있는 자들과 싸워 제대로 꺾은 자가 몇이나 되던가.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라 한들 개인의 수명은 한정되어 있고, 구성원은 끝없이 삶을 계승해 가는데 그들을 그렇게 단순하게 제어하려 한 그의 기개가 놀랍다.

그는 ‘대의각미록(大義覺迷錄)’을 써서 유포할 정도로 문화적 소양과 자부심이 대단했고 스스로 수행하여 불교에도 이해가 깊어 원명거사로 칭하고는 ‘경해일적(經海一滴)’,‘교승의해(敎乘義海)’등 여러 권의 불교 서적을 남겼다.

중국이 개방과 더불어 옹정제를 재평가하는 것은 그의 민본주의를 제대로 보아서일까. 아니면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얽히고설킨 세상사, 특히 관료 사회의 부패를 법가적으로 양단해야 제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서일까. 절대 선의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선의로 행하면 독재제의 구조적 폐단도 극복할 수 있을까. 중국몽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시진핑이 마음속으로 품은 자는 누구일까? 이 사내, 혹은 당 태종 그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사내를 넘어서는 육도와 방략을 준비하고 있는가. 그가 말한 대로 “천 리 너머를 바라보려고 다시 누각을 한 층 더 올라갔는가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왕지환(王之渙)의 ‘등관작루(登鹳雀樓)’ 중에서). 아른거리는 그림자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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