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에 사용된 언어들이 종종 관용적 표현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스모킹 건(Smoking gun)’이다. 어떤 범죄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찾은 결정적 단서를 말한다. 과학적 가설을 증명할 수 있는 핵심적인 증거 역시 ‘스모킹 건’이라 부른다.

원래 이 용어는 추리소설의 대가 아서 코난 도일의 유명작 셜록홈즈 시리즈에서 유래됐다. 코난 도일은 ‘글로리아 스콧’이라는 소설에서 “목사는 연기가 나는 총을 손에 들고 있었다”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목사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하나의 복선이자 증거인 것이다. 원작에는 ‘스모킹 건’이 아니라 ‘스모킹 피스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19세기 후반 미국 서부지역의 역사와 총잡이들의 모험을 다룬 서부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권총 한 자루만 가지고도 악당들을 제압한 뒤에 총구에 피어오르는 연기를 입으로 불면서 유유히 돌아서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때 총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을 일컬어 ‘스모킹 건’이라 한다.

이 ‘스모킹 건’이 관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74년 리처드 닉슨의 워터게이트를 다룬 기자 로저 윌킨스가 ‘결정적 증거 확보’라는 말을 하면서 ‘Where‘s the smoking gun?’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부터다. 당시 미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뉴욕 주 하원의원 바버 코너블이 닉슨 대통령과 수석보좌관 사이에 오간 대화가 담긴 녹음테이프를 가리켜 ‘스모킹 건’이라는 말을 쓴 것이다.

1990년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불륜 논란에 대한 위증 혐의로 탄핵소추 됐다. 당시 부적절한 관계의 스모킹 건으로 클린턴의 DNA가 묻은 파란색 드레스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이 9일 ‘러시아 스캔들’ 관련 수사중단 외압과 충성 요구 등을 폭로한 제임스 코미 미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의 의회 증언을 정면 반박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모니카 르윈스키의 ‘파란색 드레스’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백악관 녹음테이프’와 같은 스모킹 건이 이번 ‘러시아 스캔들’에는 존재하지 않다는 전략적 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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