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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새경북포럼 포항지역 위원·시인
책을 소장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일독한 후에는 누군가에게 선물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재차 탐독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든 서적만 책장에 남았다. 문우들의 친필 서명이 담긴 증정 시집은 애착이 흐른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자 판단이다.

소설로는 유일하게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가 꽂혔다. 공식 판매 부수가 2천만 권에 육박하는 초대형 스테디셀러. 1996년 7월 구입한 24쇄 판으로 이십 년 넘은 세월에 모서리는 먼지가 누렇다. 서너 해마다 한 번씩 완독했으니 줄잡아 여섯 번 정도는 읽었다. 사실 10권을 독파하려면 단단한 의지가 필수다.

삼국지를 보면 명의 화타가 등장해 관우를 치료한다. 독화살을 맞은 관운장은 한쪽 팔을 쓸 수 없었다. 이에 신의로 소문난 화타를 초빙한다. 그는 칼로 살을 가르고 독을 긁어내 완쾌시킨다. 시쳇말로 외과 수술을 집도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소설 속의 허구일 뿐이다. 화타는 그 전에 조조에게 살해됐기 때문이다.

명의 화타와 간웅 조조는 동향이다. 중국 안후이 성 보저우 시(안휘성 박주시)에 가면 베트남의 구찌 땅굴 비슷한 ‘조조운병도’가 있다. 출구에 설치된 ‘군설’이란 푯돌은 조조의 유일한 친필이라 한다. 또한 박물관에는 이곳 태생인 화타와 노자, 그리고 조조 삼부자의 흉상이 전시됐다.

당나라 때 지은 일명 화타묘라고 부르는 화조암에선 해마다 화타를 제사 지낸다. 삼 년 전 ‘화타 탄생 1887주년 제사 전례’에 참석한 적이 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미니버스는 경찰차의 에스코트와 시내 교통을 통제하는 환대 속에 행사장에 갔었다. 주눅들 정도로 경비가 삼엄했다.

집총을 한 경찰이 정문을 지키고 내빈은 비표처럼 노란 수건을 목에 둘렀다. 제사를 주관하는 제관을 보니 복장과 목소리가 낯익다. 중국 영화의 장면과 똑같다. 옆쪽 뜰엔 수많은 선남선녀가 오금희를 시범 중이다. 동물의 행동을 본뜬 일종의 기체조. 기실 전설 속의 화타를 관광 상품화하는 모양새다.

연이어 위무광장서 열린 ‘전국중의약교역회’는 다채로운 공연으로 눈길을 끌었다. 내 앞좌석엔 중국인민해방군남경군구 대장 복장의 군인이 앉았다. 아마도 유력 인사가 총출동한 듯했다.

이상곤의 저서 ‘낮은 한의학’에 의하면, 한의학은 두 가지로 대별된다. 유학자 출신의 유의가 맡은 학문적 영역과 한의사가 나름의 비법으로 처방하던 기술적 영역이다.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저술된 허준의 동의보감은 양자를 절충한 한의서. 거시적으론 의유의 활동으로 의서가 집필됐고 이론이 체계화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석곡 이규준 선생은 허준, 이제마와 함께 조선의 대표적 한의학자. 영남지역 최고의 유의라 불러도 손색없다. 그는 유학적 원리를 의학 이론에 접목한 독창적 부양학설을 주창한 분이다. 고향에 석곡도서관이 개관됐고, 포항을 빛낸 인물로도 선정된 이규준 선생의 재조명 사업은 때늦은 감이 있다.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프랑스 작가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에 나오는 문장. 생물학적으로는 정해지나 여성다움은 다듬어진다는 뜻이리라. 마찬가지로 영웅은 일면 창조되는 경향이 허다하다. 관우와 화타는 일정 부분 삼국지연의 덕분에 신격화됐다. 근대 한의학의 위걸인 석곡 이규준 선생도 걸맞은 평가를 받도록 민관이 합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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