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동과 103동 사이 탄환처럼 새들이 빠져나간 자취가 몇가닥 활로(活路) 같다.

세들어 사는 자의 까칠한 눈으로, 나는 내가 먼 빛의 명멸을 봤다는 생각이 든다. 쨍한 무심결의 일순, 아연실색할 악착이 유리 같은 불안이 심중에 없었다는 것. 그리고,

깃털처럼 파란이 남아 아물대는 허공.

눈 그친 뒷산 잡목 숲이 생가지 분지르는 소리 이따금씩 들려오고

놀란 아이가 별안간 넘어져 크게 울고, 젊은 어머니가 사색이 되어 뛰어나오기도 한다. 다친 몸을 더 다친 마음이 새파랗게 여미어 안고 간다.

(후략)




감상) 책상에 앉아 하얗게 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는다. 어둠에 가려 허공이던 세상이 차츰 드러나는 즈음, 나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면 그런 느낌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동쪽 먼 하늘 끝에서 돌아가신 엄마가 손짓하는 모습을 본 것도 같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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