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이 통독 사반세기여만에 87세를 일기로 세상과 작별했다.

그는 독일 역대 최장 집권 기간이던 1982년부터 1998년 사이 분단 동, 서독의 통일을 이끌고 유럽통합과 유럽단일화폐인 유로화 도입의 근간을 닦았다는 점에서 ‘통일총리’, ‘통합유럽 지도자’라는 평가가 따른다.

대중지 빌트는 16일(현지시간) 중도우파 기독민주당의 역사적, 상징적 정치인인 콜 전 총리가 루드비히스하펜 자택에서 작고했다고 보도했고, 여타 언론들도 이를 인용해 일제히 그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지난 2008년부터 노환으로 쓰러져 휠체어에 의지하며 지낸 그는 2년 전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에서 장(腸)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등 위독한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총리 외 주요 정치이력으로 1969년부터 1976년 구서독 라인란트팔츠주(州)총리를 지냈고, 1973∼1998년 기민당 당수를 역임했다.

특히 1989년 11월 9일 냉전의 ‘괴물’이라고도 불린 베를린장벽이 붕괴되고 나서 이듬해까지 조성된 이른바 통일 정국에서 ‘점진통일’ 대신 ‘조기통일’ 논리를 밀어붙여 1990년 10월의 독일 통일을 앞당겼다.

현재 유럽 최강 리더십을 굳히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발탁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구동독 신생정당 ‘민주출발(또는 민주약진)’의 대변인이던 메르켈을 발탁하여 1990년 통일이후 통독 초대 내각의 여성부 장관으로 기용한 데 이어 1994년에는 환경부 장관으로 내세움으로써 메르켈의 초고속 성장을 도왔다.

메르켈 총리에게 ‘정치적 스승’ 내지는 ‘정치적 후견인’이라는 별칭이 따랐던 이유다. 이에 맞물려 메르켈 총리는 ‘콜의 양녀(養女)’라는 별명이 한동안 지속했다.

콜 전 총리는 그러나 기민당 부패 정치자금 의혹 사건으로 수세에 몰리며 큰 시련에 처했고, 1999년 12월 사무총장이던 메르켈은 ‘당이 콜 없이 걷는 법을 배워야 한다’라며 그와 결별을 선언했다.

그 와중에 콜 전 총리는 명예총재직에서도 물러났다.

공식적으로 정계를 은퇴한 2002년 이후 건강 악화와 가족 불화설이 계속해서 그를 괴롭혔다.

무엇보다 우울증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으로 첫번째 부인을 잃고 나서 2008년 자신의 옛 총리실 비서였던 35세 연하의 마이케 리히터와 재혼했고, 이 마이케가 정상생활이 어려운 콜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 통제했다는 논란도 자주 일었다.

마이케가 콜의 자서전 저작권 분쟁 같은 굵직한 경제 문제와 콜의 언론 인터뷰 등 대다수 대외활동 문제를 정리하고 나서자, 그의 두 아들 발터와 페터는 상당한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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