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천 최병국 고문헌연구소 경고재대표·언론인

지난 대선 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검찰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와 관련하여 “요즘 검찰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먼저 눕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검찰이 소신 없이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수사를 한다는 것을 비꼰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고위공직자들이 자리보전을 위해 현 정권 입맛 맞추기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국민에게 맞추어야 할 잣대를 현 정권 실세들의 입만 쳐다보며 소신 없이 잣대를 바람보다 빨리 눕히고 있다.

이런 잣대로 문재인 대통령을 가장 기쁘게 한 인물은 인천국제공항공사 정일영 사장이 꼽힌다. 박근혜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로 가장 빨리 변신한 공기업 사장이기도 하다. 정 사장은 취임 후 첫 외부일정으로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한 문 대통령 앞에서 통 큰 선물을 내어놓았다. 비정규직 1만 명을 올해 안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던 것. 그는 지난 5월까지만 해도 로봇을 도입해 인력을 절감하겠다고 공사 운영을 밝혔던 인물이다. 그날 문 대통령은 자신의 핵심 공약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첫 번째로 성과를 올린 기분 좋은 날이었다.

지난 16일 기획재정부 김용진 2차관은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5월 노사정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공기업성과 연봉제를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김 차관은 박근혜 정부 때 기재부에서 공공혁신기획관 등을 역임하면서 공기업성과연봉제를 기획했던 당사자로 지난해 동서발전 사장 재직 때는 성과연봉제 도입에 가장 앞장섰던 인물이다. 당시 그는 노동계로부터 사장임명 철회를 요구받을 정도로 적극적으로 성과연봉제에 앞장섰었다

지난 15일에는 서울대병원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다 지난해 9월 숨진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애초 병사로 발표한 것을 이날 외인사라고 갑자기 변경해 발표했다. 서울대병원이 자신들의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 숨진 환자의 사망원인을 바꾼 사례가 병원 개원이래 이번이 최초의 일이 되었다. 병원 측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새 정부의 눈치를 보고 ‘알아서 처리’를 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서울대병원 측의 발표가 있었던 직후인 지난 17일 재빠르게 백남기 농민의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백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580일, 그가 숨진 지 264일 만이다.

이 청장은 사과 발표 후 “앞으로 일반 집회에는 살수차 배치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군중들이 과격한 집회나 행진 등을 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도 내어놓지 않고 불쑥 발표해 “이 청장이 정치권의 눈치만 보고 알아서 발표한 것이라”는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 밖에도 지난달 15일에는 교육부가 국정역사교과서를 폐지하고 누리과정 예산도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박 정권 때의 정책을 뒤집었다. 이 모든 것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으로 되돌려진 것이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란 말이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전문성을 강조 한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출세와 자리보전을 위해 정권에 따라 소신을 파는 걸 식은 죽 먹듯 하는 공무원들을 빗대는 말로 바뀌었다. 이 시대 조선조 남명 조식(曺植)과 같은 기개와 소신이 있는 공무원 한 명이라도 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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