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서 얼룩 하나 걸어 나오신다
벽에서 얼룩 한 벌 걸어 나오신다
벽에서 얼룩 한 분 걸어 나오신다

펄럭이는 얼굴과 쏟아진 소매
속에 모아 쥔 손,
속에 예쁘기예쁜, 웃음으로 싸맨 울음 한 움큼
얼룩 한 채 걸어 나오신다

작년, 재작년의
모란꽃 속을 황홀하게 걷던 영광
너무 컸던지
다 젖은 얼굴 펄럭이며 오신다

신발 머리에 이고 오신다*
신발 머리에 이고 오신다

*趙州선사




감상) 꾸리꾸리한 날들이 왔다갔다 한다. 장마가 왔으면 좋겠는데 하늘만 흐리고 비는 제대로 오지 않는다. 마당을 가꾸는 선배는 비가 오지 않아서 꽃들이 메말라간다고 걱정한다. 꽃이 마르면 나무도 마르고 마음도 말라간다. 비가 오지 않아서 시도 쓸 수 없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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