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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호 호서대교수·법학박사

우리에게 잘 알려진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치사상이 문제 삼는 것은 현대정치에서 볼 수 있는 강한 가치 중립성이다. 현대의 자유주의적인 정치이론은 절차상 공정성과 개인적인 권리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인간적인 삶의 목적과 도덕성을 중시하는 사상이다. 샌델은 자유주의적인 정치사상에서도 그것이 목표로 하는 이상(理想)은 존재할 것이지만, 만약 최고선과 같은 것을 상정하지 않으면 그 이상의 도덕적 기초는 도대체 어디에 찾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처참히 무너진 진보의 대항마로 간주되는 한국의 보수주의에도 가치 중립적인 사상을 찾을 수 있을까?

보수의 제일 목표는 ‘유지하기’ 또는 ‘보존하기’이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에게는 ‘유지해야 할 대상’과 ‘보존해야 할 가치’가 보이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주의(主義)’라 불리는 것의 본질이 특정 가치의 제시와 그 이념의 실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라면 한국 보수에 이 애매함은 ‘주의’로서나 정치사상으로서는 치명적이다. 이 상황에서 당위의 학문이며 비판의 학문으로서의 정치학이 보수의 위치를 찾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 수도 있다.

마이클 오크샷 (Michael Oakeshott)은 보수라는 것을 교의(creed)와 교리(doctrine)가 아니라 ‘보수적인 것’이라는 ‘기질’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수를 미지인 것보다 익숙한 것을, 시도할 수 없는 것보다 이루어진 것을, 신비보다 사실을, 가능성보다 현실성을, 무한보다 유한을, 먼 것보다 가까운 것을, 억만장자의 풍요보다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만족을, 완전함보다 편리함을, 유토피아의 지복보다 현재의 웃음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했다. 보라. 지금 한국의 보수를… 과연 어디에 해당하는가?

보수주의라는 정치사상의 성격은 특정의 가치에 대한 찬양이나 그 구체화를 지향하고 있는 진보와는 완전히 다르다. 원래 보수는 정치나 사회, 경제, 문화 등의 문제점을 비판한 다음 그것들의 극복을 지향하는 이론적 틀과 새로운 가치의 제시를 사명으로 하여 왔다. 하지만 불안정함과 불확실성의 염려로부터 변혁을 회피해 버린 한국의 보수는 ‘보수적인 것’이라는 자세나 성향을 근본개념으로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내실의 가치추구를 포기함으로써 규범의 유지자로서의 역할과 현실의 비판자 역할을 포기하였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의 보수는 결핍의 정치를 몰랐다. 정치의 성격을 위기의 연속과 그것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무지했다. 한국의 보수는 완전성의 정치는 합리적인 해결이 어려운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즉, 합리성은 정치가 대처할 문제가 아니라고 배제해 버리는 정치의 방식을 고집했다. 한국의 보수는 지향성과 통일성의 정치를 몰랐다. 개별 상황을 무시하고 자신들만의 이기적 정치를 고집하며 욕망의 신기루만 좇아 사회변화에 획일적으로 대응하는 우를 범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정치에 관한 논의 대부분은 구체적인 정책이다. 특정의 가치규범에 준거한 논쟁은 기피되는 추세이다. 사회환경이 대규모의 급격한 변화가 상시화되어 있고 기존의 사회질서가 뿌리째 뒤집힐 것 같은 사태가 계속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도 사회나 인간의 기본방향에 관한 논쟁이 도마 위에 오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만일 가치에 관한 담론에 대해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으면 아마 보수의 논쟁은 가치의 ‘계산’이 아닌 감정의 ‘토로’에 불과할 것이다. 이제 보수는 인간의 양심과 사회가 신(神)의 뜻에 의해서 창출된 것임을 확신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는 획일성, 평등주의, 공리주의 등과는 선을 긋고 전통의 다양성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문명사회는 질서와 계급이 필요하다. 좌파들의 주장과 달리 평등은 도덕적 평등만이 있을 뿐이다. 아무리 적극적인 정치개입도 사회적 평등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좌절하지 마라. 변화와 개혁이 보수를 절망으로 유도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변화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보수 가치에 대한 신의(信義)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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