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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새경북포럼 포항지역위원·시인

백제의 제30대 왕으로 신라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고자 노심한 ‘무왕’은 약초 장사 출신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마를 캐어 팔아 생계를 삼았으므로 서동이라 불렀다. 요즘으로 치면 그는 입지전적인 인물. 밑바닥 삶을 살다가 일약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토리는 비록 설화이긴 하지만 인상적이다.

지난가을 보름간 중국의 태항산맥 배낭여행을 갔었다. 중어가 가능한 지인과 의기투합. 산동성 곡부 여정을 마치고 하남성 휘현으로 이동했다. 전날 준비한 빵으로 버스에서 점심을 때운 11시간의 강행군. 우리가 투숙한 호텔 앞 교차로 한복판엔 커다란 석조 동상이 놓였다. 세계기록유산인 ‘본초강목’의 저자‘이시진’이다. 명나라 약학자로 고향도 아닌 타지에 조형물이라니 의아하다.

조선시대 간행된 ‘동의보감’ 역시 그렇다. 임란 후기 선조는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명했고, 그는 유배지에서 책을 완성했다. 당시의 사대부는 서얼 신분 어의인 허준을 경멸했다. 실록은 여러 대목에서 그를 힐난한다. 선조 붕어와 관련하여 의사의 자질을 의심하고 음흉한 사람이라 인격적 모독을 가한다.

허준은 고관대작의 왕진 청탁을 단호히 배격했고, 호불호가 뚜렷한 성격 탓에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다. 그 외로운 강단 덕분에 동의보감이 탄생했으니 후손들 입장에선 아이러니다.

산동성 성도인 제남의 천성광장 건너편 약국서 ‘북경동인우황청심환’을 샀었다. 저녁 식사 후 일행은 휴식을 취하고 혼자 돌아다닐 때다. 흰 가운의 남녀 약사가 여럿 근무하는 대형 점포. 선물용으로 다섯 개를 사려고 제시하니 하루 일인당 두 개만 판매한다는 필담.

한데 잠시 자기들끼리 뭐라고 소곤거리더니 모두 봉지에 담았다. 외국인이라 별 문제가 없겠다고 판단한 듯하다. 6개입 한통 23위엔(한화 약 3천910원). 혹시 가짜가 아닐까 의구심이 생겼다. 대도시 중심가 대로변에 위치한 온갖 약품이 진열된 약방이라 안도했다.

나중에 귀국할 때 보니 청도 공항 면세점에도 똑같은 제품이 진열됐다. 가격표는 89위엔. 바코드 숫자와 포장 인쇄를 거듭 대조했다. 완전 동일한 청심환이었다. 왜 그럴까. 지금도 궁금하다.

이상곤의 ‘낮은 한의학’을 보면 우황청심환은 송나라 ‘태평혜민화제국방’이란 서적에서 기원한다. 우리는 동의보감을 처방의 기준으로 삼으며 약간의 차이가 있다. 무려 29가지의 약물로 구성됐다.

내가 사온 청심환은 양초로 밀봉한 플라스틱 통 속에 비닐로 싸인 3g의 검정색 환약. 주요 성분은 인공우황, 인삼, 백약 등 27종으로 표시됐고 유효기간은 5년이다. 쌉싸래한 미각에 한약 특유의 향취가 감돈다.

우황은 소의 담낭 또는 담관에 생긴 결석이다. 긴장을 풀어 심신을 진정시키는 효능을 가졌다. 격무에 시달린 조선의 왕실에 진상됐고, 병치레가 잦았던 숙종과 정조는 유난히 집착했다. 신라에선 인삼과 더불어 우황이 외국 사신의 선물로 선호됐다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기분이 울적할 땐 어떻게 푸는가. 어디론가 훌쩍 떠나거나 나름의 마인드 컨트롤이 있겠지만, 기사회생의 신약이라 일컬어지는 우황청심환을 먹는 것도 괜찮다. 보통 구급약으로 인식하나 그렇지 않다. 일상이 힘들고 팍팍해 의기소침할 때 효과를 본다고 한다.

우황청심환은 보건복지부 안전상비의약품 대상이 아니다. 편의점에서 쉽게 구입하도록 접근성을 완화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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