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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경북생명의 숲 상임대표·화인의원 원장

역사는 다름 아니라 어제오늘 내일이다. 즉 시간적인 순서이다. 세로방향의 날줄이다. 그리고 이웃은 같은 시간에 어깨를 맞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함께 어제를 살았고 오늘을 살고 있으며 그렇게 내일을 살아갈 동지인 것이다. 역사가 세로방향의 날줄이라면 이웃은 가로방향의 씨줄이다. 이 씨줄과 날줄이 모여 쓰임새 있는 옷감을 만든다. 실이라는 1차원에서 옷감이라는 2차원으로, 즉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와 이웃을 알 때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해방 이후 포항의 예술문화활동을 살펴보는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교과서를 통해 한 번쯤은 읽어봄 직한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로 시작하는 이육사의 ‘청포도’ 시가 포항시 동해면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제 알만한 분들은 다 안다. 포항에 청포도 시비도 세 군데나 세워져 있으니 말이다. 그 청포도의 이름을 딴 청포도 다방을 아시는가. 시내 우체국 뒤에 있었던 청포도 다방에서 포항의 1세대 문화선각자들이 교류하면서 우리 지역 문화예술을 이끌었다. ‘청포도 다방’을 운영한 사진작가 박영달, 초대문화원장을 지낸 문화운동가 이명석 그리고 수필가 한흑구 이런 분들이다. 다 같이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아무도 관심 두지 않았던 문화를 이야기한 시대로 포항문화재단이라는 오늘을 있게 한 우리의 역사인 것이다. 동화작가 김일광은 이 시대를 ‘청포도 살롱시대’라 부르며 포항의 르네상스로 구분한다.

손춘익, 박이득, 박경용 이런 분들을 이어 포항문화예술의 3세대라 할 수 있는 김일광 작가와 그의 동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바다와 강 그리고 산을 배경으로 쓰여진 그의 동화는 하나같이 지명이 익숙하다. 동해와 영일만, 구룡포, 호미곶, 형산강, 내연산 등. 작품배경은 포항이지만 이야기 내용은 보편적 가치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절대 거창하지 않다. 소박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큰 감동을 받는다. “동화는 치유다”라고 하는 작가의 말이 수긍이 가는 이유다. 3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작품 중에서 ‘귀신고래’를 읽었다. 마침 2008년 포항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책이다. 정식 명칭이 한국계 귀신고래로 이름 붙여질 만큼 우리 동해에 많았으나 일제의 무분별한 포획으로 자취를 감추게 된 귀신고래를 통해 우리가 자연에 대해 어떻게 대하였는지 반성하게 된다. 자연 또한 우리의 이웃인데 말이다. 그리고 한 작품을 더 읽었다. ‘교실에서 사라진 악어’. 이 책 역시 지명이 포항이다. 동빈운하, 위판장 등 죽도시장 위판장 주차장 옥상에 있는 공부방에서 키우던 악어가 동빈운하로 사라진 내용을 담고 있다. 포항 지역에 이야기를 입히는 것은 예술가들의 몫이다. 동빈운하에서 악어를 찾아보는 상상은 그래서 재밌다. 스토리가 문화콘텐츠가 되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조된 사실이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을 찾게 되는 것도 결국 이야기를 쫓아가는 여행이다. 그리고 가까운 일본 또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가. 지난 일요일 오후 김일광 작가와 이런 내용으로 토크쇼를 가졌다. ‘청포도’ 시낭송, ‘교실에서 사라진 악어’의 동화 구연, 아코디언 연주는 이날의 토크쇼를 풍성하게 하였다. 특히 동화구연과 함께 소개한 샌드아트는 읽는 동화에서 듣는 동화 그리고 보는 동화로 확대되었다.

아코디언 연주로 감상한 ‘고래사냥’은 동해를 소중히 여기고 고래를 사랑하는 우리는 이렇게 부르는 게 낫겠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가 아니라 고래 찾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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