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 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감상) 며칠 전 어딘가에는 폭우가 쏟아졌다고 했다. 포항에도 비가 올지 모른다는 기대로 차에 우산을 실었다. 마침내 빗방울이 몇 떨어지고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그 우산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약속장소에 도착하기도 전 비가 그치고 말았다. 그 비를 어쩌겠다고…(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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