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천 따지 거물현 누루황…” 어릴 때 천자문을 외면서 희한하게도 운율이 잘 맞아서 저절로 흥얼대던 기억이 난다. 이 기막히게 잘 짜진 천자문(千字文)을 다르게는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천자문은 한 시대에 수많은 서예가들이 나온 중국 양나라 때 주홍사(周興嗣)라는 사람이 무제(재위 502~549)의 명을 받아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자문은 1구 4자로 250구, 모두 1,000자로 된 고시이다. 양무제는 1천 자의 글자를 조각 종이에 써서 뒤섞어 놓고는 주홍사에게 한 자도 중복됨 없는 운문(韻文)을 지으라는 형벌과도 같은 명을 내렸다. 주홍사는 명을 받고 하룻밤 새 천자문을 지어 올렸다. 천자문을 지은 밤 새 수염과 머리털이 온통 하얗게 세고 눈까지 멀어버렸다. 

서양에서도 하룻밤 새 머리칼이 희어진 얘기들이 전해진다.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하루 새 머리가 하얗게 셌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혁명이 시작되자 국고 낭비와 반혁명을 시도했다는 죄명으로 파리의 왕궁으로 유폐돼 시민의 감시 아래 생활하다가 1793년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체포된 이후 극도의 공포와 슬픔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순간에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했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이런 현상을 ‘마리 앙투아네트 증후군’이라 한다. 

하지만 학자들 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레프코위츠 교수는 DNA 변형에 의한 반응이라고 했고, 영국 노퍽앤드노리치대학병원 안느 마리 교수는 머리카락이 하룻밤 새하얗게 되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순간 탈모로 인해 흰 머리카락만 남아서 그렇게 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경우도 점점 늘어나는 흰 머리카락을 감추기 위해 가발을 썼다가 한순간에 벗겨져 버렸기 때문이란 것이다.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3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 이 전 대통령이 악수와 함께 오바마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재임 중 일을 많이 해서 머리가 하얗게 셌다”고 농담했다. 무슨 일이든 하나의 일에 골몰하면 머리카락이 쉬 세지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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