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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흔히 서구문학의 원형(原型)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꼽습니다. 일리아스는 ‘일리온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트로이아의 옛 이름이 일리온이니 결국 ‘트로이아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아킬레스건(腱)으로 유명한 아킬레우스가 주인공입니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으로 그리스군의 트로이 공략 후에 있었던 오디세우스의 10년간에 걸친 해상 표류와 귀향에 얽힌 모험담입니다. 두 작품에 나타나는 지리적인 지식, 문학적 표현 속에서 묘사되는 생활상태, 기타 여러 가지 내적인 증거로 미루어 보아 이 두 작품은 그리스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사실상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기술된 일종의 회고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같은 회고담이지만 ‘일리아스’보다는 ‘오디세이아’가 훨씬 더 복잡하고 정교한 기교가 개입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굳이 먼 이방의 고대 서사시를 소개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회고(回顧)만큼 인류 역사상 오래된 기원을 지닌 문화적 역량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딱히 인류 문화적 차원이 아니더라도, 한 개인의 삶에서도 회고, 회상(回想)은 아주 중요합니다. 즐거운 기억이든 고통스러운 기억이든, 인간은 평생 기억과 함께합니다. 혹자는 기억의 지배자로 살고 혹자는 기억의 포로로 삽니다. 우리가 낙천적 성격이라고 부르는 것도 따지고 보면 즐거운 기억만 보존하고 고통스러운 기억은 쉽게 잊을 수 있는 ‘지배자의 권능’일 따름입니다. 또 우리가 트라우마나, 외상후증후군이라고 부르는 것들도 결국은 고통스러운 기억의 포로로 사는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기억은 의식, 무의식 영역 모두가 개입하는 것이라서 주체의 의도나 희망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지가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해결책은 오로지 과오를 반성하고, 스스로를 드러내고, 재발 방지에 힘쓰고, 다른 것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나가는 것밖에 없습니다. ‘회고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위대한 서사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호메로스가 보여준 두 번의 걸출한 회고는 인류가 기억을 다루는 두 가지 패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분노와 복수, 오디세우스의 반성(反省)과 귀향이 바로 그것입니다. 일리아스에서는 가장 용감한 영웅 아킬레우스를 그렸고, 오디세이아에서는 지략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를 그렸다고 보통 말하지만, 사실은 그 두 가지 ‘기억을 다루는 패턴’이 더 중요한 문학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행복을 주조(鑄造)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존 조건의 충족을 넘어서는 인간의 행복감은 회고에 의지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과거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고 평가할 것이냐는 한 인간의 행복감을 주조하는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회고를 떠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경험의 의미화’ 없이는 미래로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회고가 곧 출발선이고 레인(경주로)입니다.

젊어서 가까이 지내던 한 선배가 있었습니다. 거의 매일 술을 마시던 주당파 선배였습니다. 하루는 이 양반이 제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술 한 모금 안 마시고도 잘 지내는 것을 보면 참 신통하다고요. 때로는 불쾌한 기억을 단절시키기 위해서라도 한 번씩 진탕으로 술을 마실 필요가 있지 않으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습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게 인간입니다. 취하는 것이 어디 술뿐이겠습니까? 그리고 또 덧붙였습니다. 제 사전에는 망각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오직 회고만 있을 뿐입니다, 회고는 여전히 나의 힘입니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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