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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삼국유사사업본부장

지난 5월 인하대학교 고조선연구소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유명한 윤관(尹瓘)의 9성(九城) 개척, 그 가운데서도 공험진의 위치에 관한 내용이 우리의 주목을 끈다.

고려 예종 2년(1107년), 윤관은 17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의 동북변경을 자주 침략하는 여진을 정벌한 후, 아홉 개의 성을 쌓아 여진 방어의 장구지책(長久之策)을 마련하였는데, 그 아홉 성은 함주(咸州)·복주(福州)·영주(英州)·길주(吉州)·웅주(雄州)·통태진(通泰鎭)·진양진(眞陽鎭)·숭녕진(崇寧鎭)·공험진(公?鎭) 등이다.

이 아홉 개의 성이 현재 어디인지는 하나하나 다시 철저히 고증되고 조사되어야 하지만, 특히 공험진의 위치는 예부터 중요하며 그 실재의 장소를 찾기 위한 노력이 많이 경주되었었다. 왜냐하면, 공험진은 9성에서도 최북단이며 과거 중국과 우리나라의 국경으로 인식되어왔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려사’ ‘지리지’서문에, “고려는 4경·8목·129군·335현·29진으로서 사방 경계는, 서북으로는 당나라 이래 압록을 경계로 하였고, 동북은 선춘령을 경계로 삼으니, 대개 서북으로는 고구려에 미치지 못했으나 동북으로는 고구려를 넘어섰다.”고 하였다. 그리고 공험진 이북은 요동에 복속시키고 공험진 이남에서 철령까지는 조선에 귀속시킨다는 명나라 태조 홍무제와 세조 영락제의 승인사항이 세종실록 23년(1443) 3월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공험진의 위치는 길주 이남설, 함흥평야설, 두만강 이북설 등이 있어, 국사학계가 아직 결정을 미루고 있는데, 두만강 건너 7백 리 선춘령(先春嶺)에 있었다는 설이 끊임없이 내려져 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찍이 세종대왕은 즉위 21년 되는 해, 함길도 병마절도사 김종서에게 특명을 내려, 공험진으로써 국경을 삼는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으나, 그 실제 장소를 아직 파악하지 못했으니, 직접 답사하여 공험진과 선춘령, 그리고 윤관이 세웠다는 ‘고려국경비’를 꼭 찾으라고 신신당부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경북대학교 이인철 교수팀이 옛 기록을 따라 만주지방을 답사하여 선춘령과 공험진을 찾아내고 이를 학계에 공개하였음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중국에서 선춘령을 ‘고려령’이라 부른다 하니, 이 또한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너무나 묘한 일이다.

여기에 대하여, 역사학은 물론, 문헌정보학이나 고고학적인 입장에서 찬반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그동안 설왕설래하던 공험진의 실지(實地)를 문헌에 적힌 방향과 거리를 따르면서 실제 답사한 성과가 나타났으니, 선입관 없는 자세로 그 의미에 대한 진지한 토의가 필요하다. 성과가 미흡하다면 연구를 진일보시켜야 할 것이다.

현재 동북아시아를 중심으로 국제정치와 경제는 요동치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라는 사대강국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으며 매우 불가측한 동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변화 여부에 따라, 우리의 통일이 불현듯 찾아올 수 있는데, 동북국경은 간도문제도 미완의 장으로 남아 있는바, 여기에 선춘령을 둔 명과 조선의 합의사항을 철저히 규명하고 활용하여야 한다. 독도가 중요하지만, 공험진은 더욱 중요하다. 정부와 학계의 분발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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