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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이것이 미국 현존 작가 중 가장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깝게 다가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 필립 로스(Philip Roth)의 장편 소설 제목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별로 없을 것이다. 원제(原題)도 글자 그대로다. ‘I married a communist’ 아직도 이 땅에 이 소설의 제목만 보고 이걸 읽었다가는 당장 빨갱이로 낙인찍힐까 염려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소설은 매카시즘(McCarthyism)이라는 광풍이 몰아치던 1950년대의 미국이 무대지만 작가가 이 소설을 발표한 것은 1998년이다. 더 이상 매카시즘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되고 나서야 작가는 매카시즘이라는 야만과 기만에 편승하거나 혹은 굴복한 인간상에 대한 철저한 회오(悔悟)를 미국 독자들에게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영화 등 문화계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하였고 그것이 엄연히 실행되었다는 것을 작가는 숨김없이 드러내 놓고 미국인들에게 고개를 돌리지 말고 끝까지 지나간 이야기들을 천천히 듣고 생각해 보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 화염 속에서 스러져 간 주인공 ‘아이라 린골드’는 바로 매카시즘이라는 암흑의 시대를 살아 건너온 평범한 미국인들의 자화상인 셈이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 해묵은 빨갱이 타령이 나왔다. 자유한국당 위원들은 논문 표절 시비 외에 명백한 사상(이념) 검증 잣대를 들이대며 후보 사퇴를 요구하였다. 이에 표창원 의원은 화면에 글 하나를 띄워 놓고 큰소리로 읽었다. “우리들은 이제… 일체의 매카시즘을 타도, 청소해야 할 공동의 전선에 섰습니다. 매카시즘의 한국적 아류들… 매카시즘이라는 번철(프라이팬)에 달달 볶아 새빨간 빨갱이로 만들려는 수법… 얼마나 많은 지성인의 건설적인 발언을 매카시즘적인 수법으로 탄압해 왔는가를 똑똑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참다운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들의 정치 기반… 위협을 당하면 ‘용공’이니 ‘빨갱이’니 하는 상투적인 술어로 상대세력을 학살시켰던 것이 한국적 매카시즘의 아류들이 저질러 온 이 저질러 온 행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차제에 한국적 매카시즘의 신봉자를 우리 사회에서 일소시키기 위해 분연히 궐기하여 과감히 투쟁합시다”

낭독을 마치고 표창원 의원이 던진 “과연 누가 한 이야기일까요”라는 질문은 형식상으로는 후보자를 향한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자유한국당 위원들을 향한 것이었다. 윗글은 바로 제5대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박정희가 선거일 열흘 전인 1963년 10월 5일 동아일보에 게재한 광고문이었다. 표창원 의원의 이런 따끔한 질책이 있은 후에도 자유한국당 위원들은 후보자와 관련도 없는 통합진보당 이야기를 꺼내는 등의 방법으로 이른바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를 계속 이어나갔다. 부디 국민에게 그들의 이름이 쉬이 잊히지 않기를 빈다.

연합군의 드레스덴 폭격에 대하여 평생을 두고 문제 제기를 했던 작가 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Jr.)가 애용하던 표현으로 알고 있었는데 표창원 의원은 트루먼의 어록에서 발견한 모양이다. 누구의 말이건 이것은 “자유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기본 중의 기본이어서 그 원문을 인용해본다. ‘In a free country, we punish men for the crimes they commit, but never for the opinions they have’ - ‘자유국가에서는 누구도 그들이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그들이 가진 생각으로는 처벌되지 않는다’

우리 주위에는 여전히 이런 기본 중의 기본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남아 있지만 우리는 그들도 그들의 생각만으로는 처벌되지 않음을 잘 안다. 그저 그들을 다시는 우리의 대표로 뽑지 않을 소중한 기회만은 여전히 굳건하게 우리에게 주어져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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