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 계획 수립 단계별 과제마다 주민 의견 참여 필수 과제

1995년 1월 17일 발생한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문에 파손되거나 화재가 발생한 효고현 고베시 상가와 고베타워의 모습. 고베시 제공.

글 싣는 순서

1 경북의 지진 발생 현황과 방재 체계
2 경북 동해안 원전의 지진 대응 체계
3 대지진 경험한 효고현의 지진 대응 체계
4 이바라키현의 원자력안전협정
5 일본 모델에서 찾은 국내 첫 원자력안전협정
6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원전 안전과 방재 체계


대구 달서구 상인동 가스폭발 참사가 일어난 1995년. 그해 1월 17일 일본 간사이(關西) 지방 효고현(兵庫縣) 고베시와 한신 지역에서는 일본 최초의 도시직하형 지진이 발생했다. 한신·아와지(阪神·淡路) 대지진이다. 리히터 규모 7.3, 최대 진도 7, 진원 깊이 16㎞의 대지진은 6천437명의 사망·행방불명자를 낳았고 가옥 24만9천180채를 전파 또는 반파시켰다. 효고현 총생산의 절반에 해당하는 9.9조 엔이라는 직접 손해를 끼쳤다. 단층을 따라 띠 형으로 도시 밑바닥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도시직하형 지진은 도시 기능이 집적된 인구집중지역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효고현과 고베시는 대지진의 뼈아픈 고통을 교훈과 반성의 기회로 삼았고, 철저한 재건계획으로 사람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재해에 강한 지역사회를 품은 도시로 거듭났다. 지난해 9·12 경주 대지진 이후 지진방재 5개년 종합실행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경상북도가 효고현에서 배워야 할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단계별 대응과 재건

효고현은 상상할 수도 없었던 대지진에도 망연자실하지 않고 현재의 모습으로 복구했다. 지진이 발생한 1995년 1월부터 6개월간을 ‘긴급·응급 대응기’(대피소 생활)로 정해 재해주민을 구조·구출해 피난소로 이동시킨 뒤 붕괴한 라이프라인(lifeline)을 조기에 복구하고 가설주택 4만8천 호를 건설했다. 1995년 8월부터 3년간은 ‘복구기’(가설주택 생활)로, 삶의 터전을 잃은 고령자와 가설주택 입주자를 지원하면서 피해 지역의 인프라와 주택, 산업의 조기 복구에 힘썼다. 1998년 4월부터는 ‘재건전기’(영구주택 전환)로 삼아 피해주민을 공영 영구주택으로 이전시킨 뒤 고용확보와 일자리 창출에 매진했고, 2000년 4월부터는 ‘본격재건기’로 고령자 자립지원과 활기가 회복되지 않은 지역의 재생, 안심할 수 있는 안전사회 구축 등에 힘썼다.

효고현청이 관련 기관과 매년 한 차례씩 시행하고 있는 방재 훈련 모습. 효고현청 제공.
1995년 7월부터 2005년까지 진행한 한신·아와지 대지진 재건 계획은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가 함께하는 공생사회 만들기’를 기본이념으로 660개 사업에 17조 엔 투입을 계획했고, 실제 이 기간 1천358개 사업에 16조3천억 엔을 쏟아부었다.

시로우 마추히사 효고현청 방재기획 계장은 “피해 지역의 인구는 재해 발생 후 약 15만 명(4%) 줄었으나 2001년에는 재해 전 수치를 뛰어넘었고, 현의 총생산액도 2006년에 재해 당시 수준을 회복했다”면서 “대지진 발생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고령자 자립과 커뮤니티의 활기를 찾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큰 과제로 삼고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9·12 대지진 이후 방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경북도에 조언도 남겼다.

사카모토 마코토 방재기획국장은 “단편적이 아닌 장기적 안목에서 계획을 수립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고베시가 지진 이후 재건 계획을 세울 때 주민과 공무원, 전문가가 참여하는 협의회를 조직해 의견을 수렴한 것과 같이 경북도도 단계별로 계획을 추진하면서 생기는 새로운 극복과제마다 도민을 적극 참여시켜 의견을 녹여내라.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실천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지진에서 얻은 5가지 반성과 교훈

사카모토 마코토 방재기획국장은 “22년 전 일어난 한신·아와지 대지진에서 5가지 반성과 교훈을 얻었고, 효고현은 이를 바탕으로 슬기롭게 도시를 재건할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먼저 대지진 발생 이전에는 풍수해나 태풍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준비가 돼 있었지만, 지진에 대해서는 대비가 미흡했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재해 발생 당시 현청 등 직원이 관공서에 아예 출근조차 하지 못해 초동 체제가 미흡했던 점도 반성 포인트로 삼았다.

효고현립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 서관 4층에는 한신·아와지 대지진 직후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디오라마로 생생하게 재현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또 철도나 고속도로가 붕괴하고 가옥이 파손되거나 불이 난 상황에서 주민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소방, 경찰, 자위대의 연계가 중요했지만, 당시에는 연계체제가 미흡했다. 그래서 방재 관련 기관의 연계도 매우 중요한 대응책으로 삼게 됐다.

네 번째는 커뮤니티의 방재 능력을 꼽았다. 재해가 발생하면 행정기관 대처만으로는 부족한 상황에서 붕괴한 주택에서 주민을 구출할 때 80%가 행정기관보다는 가족이나 이웃 등 지역사회가 구출한 실제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 커뮤니티 자체의 방재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교훈으로 내세웠다. 마지막으로 주택 내진율 보강 등을 통한 재해에 강한 지역사회 만들기를 꼽았다.

△반성과 교훈에서 나온 대책

효고현은 미흡했던 초동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현청 건물 인근에 연 면적 4천931㎡에 지하 1층·지상 6층 규모의 재해대책센터를 세웠다. 진도 7의 지진이 발생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철도·항만 등의 교통 시설과 상하수도와 전력·가스 공급 처리 시설 등 라이프라인이 단절된 경우에도 대처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든 것이다. 재해대책 담당 공무원들이 초기 대응에 잘 응할 수 있도록 도보로 5분 걸리는 곳 3곳과 30분 걸리는 곳 1곳 등 77개의 재해대기 숙소를 시내 곳곳에 마련했고, 재해 정보를 수집하고 공유하고 피해를 예측해 물자를 수급할 수 있는 피닉스 방재 시스템도 별도로 갖춰 효고현과 경찰, 소방, 자위대 등 309곳에 배치했다. 재해 대비와 관련해서도 간사이 지역의 광역방재거점인 미키종합방재공원을 비롯해 현 내 6곳에 담요와 식자재 등의 구호물자 비축 장고를 갖췄다.

방재 관련 기관 연계 강화를 위해서도 효고현과 소방, 경찰, 자위대, 전력회사와 가스회사 등의 라이프라인 관련 기관이 미키종합방재공원에서 매년 한 차례씩 실제 방재 훈련을 하고 있으며, 커뮤니티 자체의 방재 능력을 키우기 위해 지역 청년회나 부인회 등 자치회 단위로 자주 방재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사카모토 마코토 효고현청 방재기획국장이 재해대책센터에 마련된 방재종합상황실을 안내하고 있다.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특히 재해에 강한 지역사회 만들기를 위해 공공용 건물뿐만 아니라 개인 주택에 대해서도 지원금 지급 등의 방법을 통해 내진율을 높이고 있으며, 1981년 변경된 내진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 주택의 85.4%를 2015년까지 끌어올리기도 했다.

효고현은 이를 바탕으로 삼아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지원에 나설 수 있었고, 2015년 3월 미야기현 센다이시에서 열린 제3회 UN 세계 재해 경감 회의에서 효고현의 창조적 재건 노력을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사카모토 마코토 방재기획국장은 “전국 2천400만 명의 서명을 받아 중앙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한 끝에 ‘이재민생활재건지원법’을 제정할 수 있었고, 지진 등으로 주택에 완전히 파손된 경우 정부가 300만 엔을 지급하게 했다”면서 “매년 5천 엔을 낸 주민의 집이 재해로 무너지면 피닉스 공제조합에서 600만 엔을 지급하는 ‘효고현 주택재건 공제제도’도 만들었다. 모두 900만 엔의 주택 재건 자금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

효고현이 2002년 4월 고베시 쥬오구에 설립한 특별한 공간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는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경험과 교훈, 방재·재해 감소의 소중함을 전 세계에 전달하고 있다. 일종의 재해박물관이다.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는 전시, 자료수집·보존, 재해대책 전문직원 육성, 실천적인 방재연구와 젊은 방재전문가 육성, 재해 대응 현지 조사·지원, 교류와 네트워크 등 6가지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단순한 박물관을 넘어선다.

서관 전시실 4층에서는 한신·아와지 대지진 당시 엄청난 파괴력을 대형 영상과 음성으로 만날 수 있는 1·17 영화관을 비롯해 지진 직후의 디오라마 모형으로 생생하게 재현한 공간과 지진 직후에서부터 재건, 마을 사람들이 직면한 과제 등을 담은 드라마도 대지진 재해 홀에서 직접 볼 수 있다. 3층 지진재해 기억공간에서는 지진 발생 당시부터 복구 이후까지 생활상과 거리의 모습을 그래픽으로 만날 수 있고, 스토리텔러가 직접 설명하는 지진재해 체험담도 들어볼 수 있다. 동관에는 재해와 방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해 공개하는 자료실을 비롯해 방재·감재와 관련한 최신 정보를 접할 수 있다.

특히 올해 4월에 효고현립대학원 감재부흥정책연구과가 방재센터 내에 설립됐으며, 이 대학원은 한신·아와지 대지진의 경험과 교훈, 20여 년에 걸친 재건 노하우, 동일본대지진의 과제를 바탕으로 감재 및 재건에 공헌할 인재 육성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와다 요시아키 인간과 방재 미래센터장은 “한신·아와지 대지진 때 일어난 일들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도록 알리는 일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방재연구와 방재 인재 육성을 담당하고 있다”며 “세계적인 방재·재해감소·재해축소에 관한 정보 제공과 네트워크를 위한 거점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배준수 기자
배준수 기자 baepro@kyongbuk.com

법조, 건설 및 부동산, 의료, 유통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