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제도화된 정치조직,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는 사상과 운동을 ‘무정부주의(anarchism)’라 한다. 무정부주의가 명확한 사상적 계보로 의식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부터다.

무정부주의는 우리나라에서 일제 강점기에 항일민족운동의 한 형태로 나타났다. 무정부주의 운동은 일본에 건너간 학생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처음 전개됐다. 1910년대 일본의 지식인층과 노동운동가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그 한 갈래로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 사상이 유행했다.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한인들이 1921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흑도회(黑濤會)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흑도회는 내부 사상 대립 끝에 1922년 말 볼셰비즘을 지향하는 북성회(北星會)와 무정부주의를 지향하는 흑우회(黑友會)로 분열됐다. 박열(朴烈·1902~1974)이 주도한 흑우회가 대표적 조직이었다. 흑우회는 비밀결사와 친일파 테러, 일본 황태자 암살 등을 기도하다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됐다. 국내에서는 1923년 서동성(1897∼1941)이 대구에서 조직한 진우연맹(眞友聯盟)이라는 단체를 무정부주의운동의 시초로 보고 있다.

최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누적 관객 2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1923년 도쿄의 6천 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청년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1903~1926)의 실화를 그린 영화다. 조금은 희화화된 듯 하지만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 청춘을 불사른 두 아나키스트의 뜨거운 사랑이 절절하게 표현된 영화다. 영화의 인기와 함께 박열 의사의 생가와 기념관, 가네코의 묘지가 있는 문경을 찾는 관광객과 일본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박열기념관 장석욱 학예사는 “일본 문인들도 가네코의 고향인 가나가와현에서 그녀의 생애와 사상을 연구하는 추모사업을 하고 있다. 박열 부부는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혁명적 사고를 가진 사상가이자 행동가로 재평가 받고 있다”고 했다. 문경시도 지난 2000년 박열의사기념사업회를 발족했고, 전시관 건립, 생가 복원 등 추모사업을 펴고 있다. 지난 2012년 문을 연 기념관에는 박열 의사 일대기, 유품과 사료들이 전시돼 있다. 문경 가면 박열과 후미코를 만나봐야겠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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