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벽화에서 조선 시대 괘불까지 한국 불화를 둘러싼 1천600여 년을 이어 온 찬란한 기록인 ‘불화의 비밀’(자현 지음·조계종출판사)이 출간됐다.

우리 선조들은 고유의 독특한 양식과 심미적 시각을 담아 다양한 회화 작품을 창작해 왔다. 그중 우리나라 정신사의 중요한 축이 돼 온 불교와 관련된 채색, 그리고 회화 작품을 아우르는 ‘불화’는 오랜 역사를 축적하며 다양한 양식과 형태로 조성돼 왔다.

한국불화 초기의 양식이라 할 수 있는 벽화, 경전에 삽입된 변상도, 사찰 곳곳에 걸린 존상화, 그리고 야단법석의 상징 괘불도까지 불화의 양식적·미적 스펙트럼은 매우 다채롭다.

우리는 불화를 마주하며 이런 생각을 한다. 단순히 사찰에 걸린 옛 그림이라든가, 전문가가 아닌 이상 화폭에 담긴 의미를 알 수 없는 국가문화재라고 말이다.

혹자는 불화의 강렬한 색채와 험상궂은 신중의 모습, 거대한 불보살의 위용에 압도돼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편견에 불과하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현존하는 불화는 조성될 당시의 사회상과 선조들의 삶 그리고 의식(意識)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대표적인 불화로 손꼽히는 대형 불화 ‘괘불도’의 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여파로 인한 민중들의 고통과 관련이 깊다. 이는 불화가 그 어느 곳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우리 역사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편 불화에 표현된 세계는 우리 전통 의식의 한 축을 담당했다. 특히 이러한 전통 의식은 현대의 우리 의식, 그리고 삶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일까.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 불화 속의 세계를 개변해 새로운 양식의 매체로 등장시키기도 한다.

인기 웹툰으로 잘 알려진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 저승편’은 우리 전통의 사후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 주인공의 지옥 심판 이야기다. 그런데 이 작품 전편에 흐르는 저승의 세계와 지옥의 묘사는 통도사 ‘시왕도’를 모티브로 했다. 더구나 ‘권선징악’의 주제의식은 ‘신과 함께’와 통도사 ‘시왕도’가 공유하고 있는 주요 기틀이다.

결국 불화를 보는 것은 조성 당시 선조들의 삶과 현실, 그리고 이상을 추적하는 일이다. 또한 우리 고유문화의 원천 혹은 원형을 좇는 일이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전통의 의식, 역사의 흐름을 목도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가 전국의 사찰과 박물관 등에서 만나볼 수 있는 불화는 그 외연이 넓다. 불화는 불교의 ‘시각적 경전’이라 할 수 있지만, 특정 종교의 교리와 사상만을 담은 회화로 한정지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은 그간 불교문화 관련 교양서를 출간하며 주목 받아 온 자현 스님의 ‘불교문화의 비밀’, 그 세 번째 책이다. 앞서 출간된 ‘사찰의 비밀’, ‘스님의 비밀’에 이은 세 번째 주제는 바로 ‘불화(佛畵)’. 이 책의 출간은 한국불화를 단독으로 다룬 단행본이 많지 않은 시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특히 출가 수행자이자 불교학, 동양철학, 역사, 미술을 전공해 온 저자가 그간의 지식을 십분 발휘해 불화를 역사, 문화, 종교의 다각적 측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점은 이 책의 매력 중 하나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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