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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경북생명의숲 상임대표·화인의원 원장

장마철 무더위에 가뜩이나 짜증 나는 마당에 요즘 국회 돌아가는 걸 보면 속에 천불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협치’는 본래의 뜻을 잃고 국회 내에서만큼은 속 좁고 치사한 정쟁의 의미로 그들에 의해 왜곡돼 버렸다. 그런데도 유권자인 국민은 너무도 못마땅하지만 비난하는 것 말고는 달리 압박할 수단이 없다. 그래서 더 덥고 더 짜증이 날 뿐이다. 잘못된 권력을 탄핵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달성할 만큼 국민의 높은 정치의식에 비해 우리의 의회정치는 여전히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왜일까.

많은 정치학자는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제인 소선거구제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승자독식 구조’라는 비판을 받는 지금의 소선거구제하에서는 지금처럼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의회구성이 애초 불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낮은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그 지역 전체를 대표한다는 것 자체가 ‘득표율에 따른 의회구성’이라는 의회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면서 중대선거구제 또는 정당 득표율에 따른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는 이미 과거에도 여러 차례 제기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번번이 제도개선이 무산된 것은 선거법이 정치권의 타협 대상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 선거법에 관한 한 정치권만의 논의가 개인적으로 달갑지 않은 이유다.

지금의 소선거구제는 87년 개헌을 통해 도입되었다. 당시 대통령 직선제 관철이라는 대의에 가려 선거구제 논의는 시민사회는 물론 국민 사이에서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여야가 참여한 ‘8인회의’는 결국 대통령 직선제를 도입하면서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5년 단임과 소선거구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최종 단일 개헌안을 마련했다. 당연히 그들만의 개헌합의였다.

지난 2001년, 헌재는 당시 1인1표제 비례대표 선출은 위헌결정을 내렸다. 지역구 당선의원 수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정한 기존의 제도는 잘못이니 고치라는 것이었다. 많은 시민단체와 학계 그리고 국민은 이를 계기로 제대로 민의가 반영된 선거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하지만 더욱 공고해 진 지역주의의 단맛에 익숙해진 기득권 정치세력들은 근본적인 제도개선은 외면한 채 정당투표 도입만을 합의했다. 시민 의견은 역시나 무시당했다.

2011년 헌재는 ‘평등권 침해’라는 이유로 선거구별 인구 편차를 재조정하라며 선거법 일부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또다시 선거제도 개선이 공론의 장에 오르는가 했지만, 역시나 정치권은 지지부진한 논의 끝에 일부 지역을 짜 맞추기를 하는 선에서 유야무야로 넘어가 버렸다.

지난해 20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 최근까지 90여 건의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중 지난 3월까지 15건이 본회의를 통과하고 나머진 여전히 계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선관위가 지난 2015년 제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된 적이 없다. 정치권이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선거법 개정에 얼마나 미온적인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금 개헌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모든 정당이 내년도 개헌을 이미 합의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개헌보다 중요한 것이 선거제도 개혁이다. 지금처럼 대다수 유권자의 표심이 무시되는 소선거구제는 반드시 손을 봐야 한다. 민심이 고스란히 담긴 의석수 배정이 선거구제 논의의 핵심이어야 한다. 바른 정치는 바른 선거제도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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