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미국 애리조나 사막의 오피 인디언들의 기우제가 유명하다. 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 인디언 기우제는 백발백중 효험이 있었다. 영험한 레인 메이커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들의 기우제는 비가 올 때까지 계속됐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인디언들이 비과학적인 기우제를 통해 인내와 사회에 대한 소속감 등 긍정적 삶의 지혜를 얻는다는 연구 보고서를 냈다.

포항 비학산 기우제도 인디언 기우제 못지않은 풍속적 의미를 담고 있다. 비학산에는 산 정상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든다는 속설이 있다. 농사의 풍흉을 좌우하는 여름에 비가 내리지 않고 가뭄이 지속 되면 산 아래 마을 사람들이 산으로 올라가 온통 산을 파헤치곤 했다. 이 같은 풍속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어서 ‘일월향지’라는 책에도 기록이 나온다. 책에는 “일제시대 황보, 김, 이, 손씨 등이 시신을 암장해 부근 면민이 봉기해 파내다가 폭동화 한 사건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할 정도다.

비학산 정상에는 시신 1구가 들어갈 만한 석함(石函)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이 천하명당으로 시신을 묻으면 당대에 발복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묘를 쓰면 가뭄이 들기 때문에 여기에 묘를 쓰는 것은 금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을 받기 위해 비학산 정상에 암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긴 가뭄이 이어지면 비학산 자락의 흥해읍, 신광면, 청하면, 기계면 등 4개 읍면 주민들은 호미를 손에 쥐고 산으로 올라가 무덤같이 봉긋한 곳은 모두 파헤쳤다. 호미로 땅을 파기 시작하는 순간 빗방울이 듣기 시작해서 다 파헤치고 집으로 올 때는 온몸이 비에 흠뻑 젖었다는 믿기 어려운 얘기까지 전해진다. 그만큼 영험하다는 얘기다.

지난 1994년 혹심한 가뭄으로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고 식수도 부족할 지경이 되자 비학산자락 주민 200여 명이 암장 된 묘를 파내기 위해 산을 오르고 기우제가 올려졌다. 기우제는 이 산의 6부 능선에 있는 무제등에서 지낸다. 최근 오랫동안 비 같은 비가 내리지 않자 지난 7일 비학산 기우제가 올려졌다. 기우제를 주관한 최태선 신광면장은 “우리 주민들의 간곡한 바람이 하늘에 닿아 장대 같은 비가 내리기를 기원한다”고 하늘에 빌었다. 조만간 비가 내릴 것이다.

이동욱 편집국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논설주간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